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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연구에 짓눌린 대학 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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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연구에 짓눌린 대학 교육

입력
2009.02.26 2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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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의 마지막을 입시 열풍으로 보낸 청소년들이 다음 주부터 대학생이 된다. 이들의 인생에서 대학 시절은 인격과 지식을 동시에 배양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기회이다. 그러나 현실은 이상적이지 않다. 대형화된 대학 시스템에서 학생들은 마치 백화점 손님처럼 교육상품 을 스스로 골라 쇼핑 백에 넣어야 한다.

이들은 '자유롭게'라는 수식어 아래 거의 방치된 상태에서 자신의 길을 찾아가야 한다. 학점을 높이고, 각종 자격증도 따고, 취업이 잘되는 학문분야를 복수전공하고, 토익 성적을 올려놓는 등의 '스펙' 향상 작업이 신입생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연구성과 우선'에 학생 방치

이런 학생 방치 현상은 아이러니컬하게도 대학의 연구기능이 강조되면서 심화되었다. 교수 들이 한정된 시간을 연구에 많이 쓸수록 학생을 위해 쓸 수 있는 시간은 그만큼 줄어든다. 현실의 많은 교수들은 교육자로서의 자부심과 의지를 강하게 지니고 있다. 그러나 열심히 강의하는 것, 학생을 면담하는 것, 각종 모임에 함께하는 것, MT에 동행하는 것, 동아리 지도에 나서는 것, 취업을 알선해 주는 것 등의 당연한 임무는 점차 부차적 영역으로 축소되고 있다.

대학 내외의 각종 평가에서 연구성과만을 주요 지표로 활용하고 있는 현실은 교육에 열심인 교수의 기여를 인정하기 어렵게 만든다. 더구나 연구성과는 논문 편수로 쉽게 측정이 되지만 학생들을 열심히 지도한 교육성과를 측정하기란 쉽지 않다. 정부는 'BK 21 사업' 등 다양한 연구 지원을 해왔다. 이로 인해 연구 역량이 제고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교양교육 프로그램을 보다 충실히 운영하고, 강의 방식을 개선하고, 보다 실용적인 전공교육 프로그램을 짜는 데는 이렇다 할 평가와 지원이 이뤄지지 않는다. 이렇다 보니 어떤 대학들은 조금 부족한 학생이라도 적극적인 교육을 통해 인재로 만들어내겠다는 생각은 아예 하지 않는다. 머리 좋은 학생들을 뽑아 그대로 졸업시키는 것이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라고 판단하는 것 같기도 하다.

이런 상황에서 교육과학기술부가 지난해부터 '교육역량강화 사업'을 내놓아 대학 교육을 장려하고 나선 것은 다행스런 일이다. 하지만 현재 교육역량강화 사업 지원금 수혜 대상자 선정과 규모는 졸업생 취업률, 전임교원 확보율, 1인 당 교육비 등의 정량 지표에 의해 정해진다.

교수가 학생들을 얼마나 열심히 지도하는지에 대한 평가는 빠져있다. 다행히 안병만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은 "학생에 대한 적극적인 지원을 펴는 대학에 가산점을 주는 식으로 개선하겠다"고 약속했다. 정부가 교육 역량을 강화하기 위한 정책기조를 보다 내실 있게 견지한다면 대학 내부의 개혁의지도 더욱 힘을 받게 될 것이다.

굳이 선진국 사례를 들지 않더라도 모든 대학이 연구중심 대학일 필요는 없다. 모든 교수가 연구중심 교수일 필요도 없다. 어떤 대학은 연구를, 어떤 대학은 교육을 강조하고, 또 다른 대학은 이를 병행하면 된다. 또한 어떤 교수는 연구에, 어떤 교수는 교육에 매진하고, 또 다른 능력 있는 교수는 두 가지 모두에 힘을 쓸 수도 있다.

학생과 인격적ㆍ지적 교류해야

그러나 그간 한국 대학과 정부는 물론 언론마저도 대학의 연구기능에만 집착하는 경향을 보여 왔다. 이 와중에 희생 당하는 것은 대학생들이다.

이는 이들을 고용해야 할 기업의 부담이 되고, 결국 국가적 손실로 이어진다. 기업과 사회는 통합적 사고를 하는 인재를 원하지만 현재 대학교육 시스템에서 내놓을 수 있는 '상품'의 질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대학교육의 품질은 학생과 교수가 함께 만나 인격적ㆍ 지적 교류를 하는 시간과 정비례한다.

강형철 숙명여대 교수ㆍ기획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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