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세 공방이 한창이던 때. 감세로 인한 세수 감소 우려에 정부가 내놓은 답변이 "감세는 기업들의 투자를 활성화해 경기를 부양함으로써 세수를 늘린다"는 것이었다. 세금을 줄여주면 기업들이 그 돈으로 투자에 나설 거라는 주장이었다. 심지어 "모든 감세는 투자에 긍정적"이라고까지 했다.
물론 당시에도 반론이 빗발쳤다. "지금 같이 어려운 상황에서 법인세를 낮춰준다고 기업들이 투자에 나설 것 같으냐!" "아무리 세금이 높아도 수익이 보장되면 투자를 늘릴 것이고 세금이 낮아도 수익성이 없으면 투자를 않는다!" 이에 대해 정부는 "경제학 교과서 좀 읽어 보라"며 냉소적 답변으로 일관했다.
그로부터 수 개월 뒤. 당정이 연일 기업들을 닦달하고 있다. "제발 투자 좀 하라"는 것이다. 박희태 한나라당 대표가 "대기업들이 금고에 100조원 쌓아 놓고 있다"고 질책하더니, 24일엔 윤증현 기획재정부장관이 경제5단체장을 만나 고용과 투자 확대를 주문하고 나섰다.
물론 벌써 감세 효과를 언급하기엔 좀 이른 측면이 있다. 하지만 그렇잖아도 100조원 이상의 현금을 금고에 쌓아두고 있는 마당에, 대기업들이 감세로 득을 본다고 투자를 늘릴 것을 기대하긴 무리다. 대니 라이프치거 세계은행 부총재도 이날 한 강연에서 "감세가 기업이나 가계에 어떤 영향을 주는 지 현재 상황에서 확실하게 알기 어려운 만큼 감세는 줄이고 재정지출을 더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쯤 되면 감세 예찬론은 이제 신중히 되돌아 볼 만도 한데, 정부는 여기서 한 발 더 나갈 기세다. "기업의 투자 확대를 위해 상속세법 개정(상속ㆍ증여세 인하)을 조속히 추진해야 한다"는 데 정부와 경제5단체장이 의견을 같이 했다니. 결국 그 돈도 고스란히 대기업 금고에 쌓이는 걸 눈으로 확인해봐야 하나 보다.
이영태 경제부 기자 yt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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