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막스 베버(1864~1920)는 역사와 종교, 사회학, 경제학, 정치학 등에 걸쳐 근대 학문 체계 확립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 그를 근대의 마지막 대가라고 부르는 이유다. <직업으로서의 정치> 는 <직업으로서의 학문> 과 함께 생애 막바지의 강연을 엮은 책이다. 직업으로서의> 직업으로서의>
베버는 여기에서 직업정치인 출현에 주목하고, 정치를 직업 또는 소명으로 삼으려는 사람들이 갖춰야 할 자질과 덕목을 제시한다. 바로 열정과 통찰력, 책임감이다. 그는 직업정치인을 "정치를 위해" 사는 정치인과 "정치에 의해" 사는 정치인을 구분하기도 했다.
■ 정치에 의해 사는 정치인이란 정치를 생계수단으로 삼는 사람들이다. 반면 정치를 위해 사는 정치인에게는 소명이 요청된다. 베버에게 국가란 "정당한 물리적 폭력을 독점한 집단"이며 정치는 그 물리적 폭력, 즉 권력을 차지하기 위한 투쟁이다. 그러니 현실은 어리석고 비열할 수밖에 없다.
이런 현실에 좌절하지 않고 "그럼에도 불구하고"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정치에 대한 소명을 갖고 있는 정치인이다. 소명이 없다면 정치로 생계를 해결하는 정치적 기식자에 지나지 않으며 권력 행사의 결과에 책임감이 없는 것은 정치적 소명의 배반이다. 베버가 직업정치인에 부여하는 소명은 이처럼 무겁다.
■ 우리 사회에서 통용되는 직업정치인이라는 말은 베버의 생각과는 한참 거리가 멀다. 한때 대권의 꿈을 꾸다가 중도 하차한 고건 전 총리는 "나는 직업 정치인이 아니다"고 말한 적이 있다. 지방선거나 국회의원 재ㆍ보선에 왜 몸을 던지지 않느냐는 질문에 대한 답이었는데, 직업정치인에 대해 일정한 거리를 두고 싶어하는 마음이 진하게 묻어난다.
이렇다 할 직업 없이 정치권 주변을 맴도는 사람들을 지칭하는 직업정치꾼이라는 말도 다분히 부정적이다. 교수직을 유지한 채 정치권을 기웃거리는 폴리페서들에게는 직업정치인이라는 딱지가 붙는다.
■ 노무현 전 대통령이 퇴임 후 봉하마을 낙향 1주년 소회를 담아 홈페이지 '사람사는 세상'에 엊그제 올린 글에서 직업정치를 언급했다. 향후 계획을 밝히는 부분에서 "생각이 좀 정리되면, 근래 읽은 책 이야기, 직업정치는 하지 마라 하더라도 대통령은 하지 마라는 이야기, 인생에서 실패한 이야기, 이런 이야기를 좀 해보려 한다"고 했다.
더 이상 언급이 없어 자세히 알 수 없으나 직업정치에 대해 좋은 얘기는 아닐 것 같다. 상황이 상황인 만큼 그의 신산한 마음을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대통령직 수행 자체를 후회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정치인으로서 그의 열정은 자타가 인정한다. 하지만 베버가 역설한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소명은 미약했던 것일까.
이계성 논설위원 wksle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