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안 풀린 1년이었다. 현실은 이명박 대통령의 의욕을 따라주지 않았다. 머피의 법칙이 작동한 것일까. 번번이 예상치 않은 일들이 바쁜 걸음을 잡았다. 고소영ㆍ강부자 내각 논란,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 집회, 국회 경색, 미국발 금융 위기와 경기 침체가 그랬다.
자율과 경쟁이 핵심인 이 대통령의 교육 정책도 요즘 돌부리에 차이고 있다."올해 교육 개혁을 이루겠다"고 선언한 이 대통령이 교육 정책을 만든 이주호 전 청와대 수석비서관을 교육과학기술부 차관에 임명하는 등 의욕을 내고 있지만 앞길은 순탄치 않아 보인다.
잘못 받아들여진 자율과 경쟁
대학과 초중고에 많은 권한을 넘겨준 자율 정책은 부작용을 양산하고 있다. 이 대통령은 입시 관리권을 한국대학총장협의회에 줬지만 대학들은 정부와 국민의 기대를 외면했다. 이 대통령 의도대로라면 대학은 창의성과 잠재력을 갖춘 학생들을 발굴ㆍ육성해 공교육을 정상화하고, 대학의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노력을 보였어야 했다.
그러나 대학들은 입시 자율권 부여의 의미를 3불 정책 폐기 용인으로 확장했다. 앞 다퉈 본고사ㆍ고교등급제 논란을 일으켰다. 손쉽게 성적 우수자를 선점하려고 경쟁하듯 3불 정책을 무시한 입시 전형안을 내놓았다. 자율의 준비가 안 된 대학을 믿고 덥석 자율을 준 것은 실책이었다. 일선 중ㆍ고교도 마찬가지다. 자율화 바람을 타고 우열반이 확산되고, 0교시 수업과 야간 강제 자율학습이 부활하거나 사설 모의고사 횟수가 느는 등 점수 경쟁만 더 부추긴 꼴이 됐다.
'경쟁의 바람'도 연착륙에 어려움을 겪고 있긴 마찬가지다. 교원평가제 전면 확대 실시는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의 반대 속에 아직도 국회에서 논의 중이다. 기초학력 미달 학생의 학업성취도를 끌어 올리고 학교 간, 교사 간 경쟁을 촉발하려던 학업성취도 평가는 평가결과 조작, 보고 누락 파문으로 신뢰에 금이 가는 타격을 입었다.
이 대통령의 교육 정책이 이처럼 자꾸 돌부리에 걸리는 이유는 다양하면서도 복합적이다. 교육 철학과 정책 방향을 대다수 교육 주체들과 공유하지 못한 게 화근이다. 교육 본질에 대한 진지한 논의와 교감 없이 자율과 경쟁이라는 잣대로만 교육 문제를 단순화시켜 자기 편의주의적 진단과 처방을 내린 것이 원인이다.
교육의 지향점이 다른 전교조 교사 등 일선 교사들을 존중하고 설득하는 자세는 보여주지 않은 채 학교에 기업형 성과 지상주의만 주입하려 함으로써 새 교육 정책들이 뿌리내릴 수 있는 토양을 확보하지 못했다.
무엇보다 현실에 바탕한 예측과 분석 없이 아귀가 맞지 않는 정책으로 교육 주체들의 의구심과 혼선을 키웠다. 공교육을 살려 사교육 의존도를 줄이고 점수보다 잠재력과 창의성을 갖춘 학생들을 뽑는 식으로 대입 제도를 개선한다면서 실제로는 사교육을 조장하고 점수 경쟁을 부추기는 정책을 쏟아냈다.
학업성취도 평가만 해도 그렇다. 이 대통령은 23일 라디오 연설에서 "학력평가 자료를 가져야 맞춤형 교육정책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성적 조작 파문에서 보듯 학력평가를 강조하게 되면 학생들의 개성, 창의성, 잠재력이 존중되는 교육은 사라지고 점수 지상주의 교육만 남게 된다. 이래서는 맞춤형 교육이 이뤄질 수 없다.
본심이 무언지 알 수 없는 발언
기초학력 미달자 성적 향상을 위한 지원이 목적이라면 표집 평가로 충분할 텐데 굳이 전수 평가를 고집하고 교장 평가와 연계하려 하는 것은 결국 학교를 점수 경쟁의 장으로 고착화하려는 의도로 해석될 소지가 다분하다. 이래서는 교사들의 공감과 호응을 얻기 어렵다.
"점수는 낮아도 잠재력과 창의력과 인성을 갖춘 학생들이 입학할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는 이 대통령의 발언과 점수 경쟁을 부추기는 교육 정책 사이에서 국민들은 혼란을 느끼고 있다. 무엇이 이 정부의 본심인지 의아해 하고 있다. 이 대통령은 이런 혼선과 의구심부터 제거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교육 정책은 온갖 돌부리에 채여 상처만 날 뿐이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아이들 몫이다.
황상진 논설위원 april@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