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보다 더 나쁠 수 없다. 꽉 막힌 터널 안에서 오도가도 못하는 상황. 국가 부도(디폴트)가능성이 나오면서 '제 2 금융 위기설'의 진원(震源)으로 꼽히는 동유럽을 바라보는 시선은 불안 그 자체다.
그 불안감은 펀드 수익률에서 그대로 드러난다. 한국펀드평가가 집계한 자료를 보면 동유럽 신흥 시장에 투자하는 주식형 펀드의 3개월 평균 수익률은 –6.61%(23일 오전 기준) 였다.전체 해외 주식형 펀드의 3개월 평균 수익률 7.58%과 비교하면 '하늘과 땅' 차이.
지난 1년 성적표를 봐도, 그 나마 성적이 제일 낫다는 '알리안츠GI동유럽주식(자) 1의 1년 수익률이 -51.60%였다. 같은 기간 전체 동유럽 펀드 1년 수익률은 -67.26%로 전체 해외 주식형 펀드 평균 수익률(-43.34%) 보다 20%포인트나 낮다.
최근 동유럽 펀드의 부진은 러시아, 동유럽 등 투자 대상의 경제 상황이 절체절명의 위기로 치달은 탓이다. 러시아 증시는 지난해 5월 고점(2,498.10)을 찍은 다음 77%나 폭락했고 지난 달에는 500선이 무너졌다. 동유럽은 더 우울해 올 들어 체코(-15.39%), 폴란드(-13.46%), 헝가리(-3.93%)의 주가는 곤두박질 했고 통화 가치는 두 자리 수 이상 떨어졌다. 경제성장률 전망 치도 -9% 이다.
특히 1년 안에 갚아야 할 단기 빚이 외환 보유액과 같거나 그 보다 많기 때문에 스스로 빚을 갚을 능력조차 없다. 이미 라트비아, 헝가리, 우크라이나가 국제통화기금(IMF)의 지원을 받았고 불가리아, 루마니아, 리투아니아, 에스토니아도 곧 손을 벌릴 처지다.
문제는 동유럽의 위기 상황이 서유럽 국가들까지 전해지면서 이들의 경제 상황 역시 녹록치 않다. 동유럽 국가들이 외부에서 꾼 돈 1억7,000억 달러(추정) 대부분이 바로 서유럽에서 온 것이기에 동유럽이 손을 들어버리면(부도) 서유럽도 연쇄 작용으로 위기에 빠질 가능성도 있다. 급기야 지난 주 신용평가사 무디스는 동유럽 경기 침체에 따라 손실 위험이 큰 서유럽 은행들의 등급을 내리겠다고 경고했다. 박소연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동유럽 금융위기의 불을 빨리 끄지 않으면 서유럽 금융기관 역시 공도동망(共倒同亡) 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이런 우려를 반영하듯 지난 한 주 MSCI유럽주식은 5.64% 떨어졌고, 서유럽의 선진국에 주로 투자하는 유럽형 펀드의 수익률 역시 -3.39%를 기록했다.
전문가들은 동유럽 관련 펀드의 비중을 줄이라면서, 기회만 생기면 환매하라고 충고한다. 이경수 토러스투자증권 연구원은 "부채에 의존했던 동유럽 경제의 특성을 볼 때 외국은행 들이 빌려준 돈을 회수하면 큰 위기에 처할 가능성이 높다"고 강조했다.
특히 동유럽 펀드의 수익률은 최악이었지만 동유럽 펀드에서 빠져 나간 돈은 그리 많지 않았다는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지난 3개월 동안 동유럽 펀드에서 305억원(2.1%)가 빠져나가는 데 그쳤는데 이것은 워낙 눈 깜짝할 새 망가지다 보니 투자자들이 환매 자체를 포기한 것이라는 것.
채수호 삼성증권 연구원은 "동유럽에 대한 투자는 이미 심각한 투기적 단계에 들어섰다"면서 "과거 신흥 시장의 장기적 성장을 기대했던 것과 달리 현재 동유럽 투자는 '파산이냐, 회생이냐'와 같은 투기적 베팅이며 이런 베팅을 감당하지 못할 투자자라면 더 일찍 반등할 수 있는 여건을 갖춘 대상(중국, 인도)을 찾는 게 낫다"고 말했다.
박상준 기자 buttonp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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