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에 총이 겨눠지는 섬뜩한 상황이었다."
소말리아 해상에서 해적에게 납치됐다가 90일 만에 풀려나 21일 아랍에미리트 후자이라항에 도착한 '켐스타 비너스(2만톤급)'호의 한국 선원 5명은 납치 당시 상황을 회고하며 치를 떨었다.
이들이 해적에게 납치된 것은 지난해 11월 15일 예멘 아덴항 동쪽 96마일 해상을 지날 때였다. 소말리아 해적 30명을 태운 소형 보트 1척이 갑자기 나타나 정지할 것을 명령해 선원들이 속도를 높이며 해적을 따돌리려 했으나 무차별적으로 총기를 난사해 조타실 유리창이 깨지면서 더 이상 벗어날 방도가 없었다.
배에 오른 무장 해적들은 한국 선원 5명과 필리핀 선원 18명 등 선원 23명을 모두 조타실에 집합시킨 뒤 각각 옷 1벌만 남긴 채 결혼반지, 시계 등 모든 것을 강탈했다.
이후 선원들은 해적들의 철통같은 감시 속에 비좁은 조타실에 갇힌 채 창살 없는 감옥 생활을 시작해야 했다. 씻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작업복 1벌로만 버티는 생활이 이어지면서 조타실은 온갖 악취로 뒤덮였다.
가장 공포스러웠던 순간은 가끔 선원들을 1,2명씩 갑판으로 불러내 허공에 총질을 한 뒤 머리에 총을 겨눴을 때다. 선사측과 몸값 협상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기 위해 선원들을 압박하기 위한 수단이었던 것 같다고 선원들은 전했다.
피랍생활이 한 달여를 넘어가자 배에 있던 부식이 모두 바닥 나 선원들은 배고픔과의 싸움도 벌여야 했다. 한끼도 못 먹고 약간의 물로 연명하는 생활이 연일 계속되자 해적들도 궁여지책으로 선원들에게 낚시를 허용했다.
피랍 두달여가 지났을 때 망망대해에서 한국 원양어선 오로라9호와 백양37호를 만나, 해적들의 감시 하에서 쌀과 고기 등 부식을 지원받을 수 있었다.
절망 속에서 낭보가 날아든 것은 지난 13일. 선사측과 협상이 타결됐는지 해적들이 비너스호에서 내려 소형보트를 타고 유유히 사라졌다. 그간의 고생으로 대부분 몸무게가 10∼15kg씩 빠진 선원들은 비너스호를 이끌고 21일 후자이라항에 도착, 기다리고 있던 가족들과 눈물의 재회를 나눴다.
서병수(58) 선장은 "무사귀환을 위해 애써주신 정부 당국자들께 고맙다는 인사를 드리고 싶다"며 "국민여러분께 심려를 끼쳐 드려 죄송하다"고 말했다.
두바이=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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