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후기
무심한 발길에
노랗게 핀 달맞이꽃이
이슬에 젖은 몸을 툭툭 턴다
달은 기울고
함평 기산천 긴 방죽 위로
소 울음소리 가득 실은 트럭들
먼지를 일으키며 달려간다
살아간다는 것은
시간에 코를 꿰인 채
죽음을 향하여 이끌려 가는 것
어둠 속 보이지 않는 손들이
코뚜레를 잡아당긴다
새끼를 잃은 어미 소가
왕소금 같은 눈물을 흘리고
소매를 걷어붙힌 수의사의 긴 팔이
암소의 자궁 속,
수렁처럼 깊은 곳을 더듬는다
팔려가는 소들의 서글픈 울음소리를 들으며
소머리국밥을 먹는 우시장의 아침
죽어가던 소의 눈물이 배어 있는지
국밥 국물이 짜디짜다
함민복 시인의 따뜻하고 서러운 시 '눈물은 왜 짠가' 속에서 시인은 어머니와의 이별을 그려두었다. 가세가 기울어 갈 곳이 없어진 어머니를 모시고 고향 이모님 댁에 보내드릴 때 어머니가 고깃국을 먹고 가자, 하셔서 시인은 어머니를 모시고 식당으로 간다.
어머니는 평생 중이염을 앓으셔서 고기를 못 드시던 분이었지만 고기는 아니라도 고기 우려낸 물로 아들 몸보신을 시키고 싶으셨던 것이다.
어머니가 시인의 투가리에 부어주던 고깃국물, 시인은 눈물을 땀인 양 훔쳐내면서 "눈물은 왜 짠가", 라고 물었다. 짐승의 살과 뼈와 내장을 우려낸 더운 국물, 그 국물은 가난한 시절을 살아왔던 세대들에게는 보신의 마술이었다.
박후기 시인은 죽어가던 소의 눈물을 소머리국밥을 먹으며 떠올리면서 국밥 국물이 짜디짜다고 말한다. 소 울음소리를 가득 실은 트럭, 왕소금 같은 눈물을 흘리는 새끼를 잃은 어미소.
시간의 코뚜레에 끌려가는 소와 인간의 운명은 다르지 않다. 다른 점이 있다면 인간이 자신의 삶을 소보다는 더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다는 점일 것이다.
독립 다큐멘터리 영화 '워낭소리'에 대한 이야기를 인터넷 뉴스로 읽으며 불혹까지 살아갔던 일소의 운명과 그 소의 평생 친구, 노인을 생각해 보았다. 어머니와 이별하던 시인의 짠 눈물과 소의 눈물이 배어있던 짠 국밥이 교차되기도 했다. 왕소금으로 짜디짠 두 눈물은 과연 다른 눈물일까?
허수경ㆍ시인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