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 성급한 예상이지만, 윤증현 신임 기획재정부장관은 아마도 재임중 중간 이상의 평가를 받을 것이다. 여기엔 그럴 수 밖에 없는 몇 가지 정황적 이유가 있다.
첫째는 반사효과. 이유야 어떻든 강만수 전 장관의 인기가 워낙 없었던 터라, 윤 장관은 전임자를 답습하지만 않는다면 상대적으로 돋보이게 되어 있다.
둘째는 취임 타이밍. 윤 장관이 경제팀을 맡은 지금은 불황이 최고조로 치닫는 시점이다. 경기가 4분기쯤부터 풀릴 것이란 연구 기관들의 전망이 크게 빗나가지만 않는다면, 윤 장관은 재임 중 경기호전지표를 손에 쥘 것이고 이로 인해 '경제를 살린 장관'으로 기억될 것이다.
셋째는 제한된 정책대안. 만약 지금이 정상적 상황이었다면 이런저런 정책의 선택을 놓고 고심을 했을 터. 하지만 위기 국면인지라 윤 장관에겐 주어진 카드가 별로 없다. 고민할 여지도 별로 없고, 설령 잘못되어도 실패책임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울 수 있다.
그렇다고 윤 장관이 '꽃놀이패'를 쥐고 있다는 뜻은 아니다. 여전히 갈 길은 멀다. 다만 그가 '평균 이상의 장관'정도가 아닌 명실상부한 '명장관'으로 남으려면, 몇 가지 근원적 한계를 반드시 뛰어넘어야 한다.
우선 기획재정부 장관으로서의 자질. 그 연배의 금융관료 중에선 단연 최고지만, 불행하게도 윤 장관의 경력에선 '기획'도 없고 '재정'도 거의 없다.
기획ㆍ재정과 떨어져 살아왔던 기획재정부장관을 어찌 평가해야 할까. 물론 "수십 년간 경제정책과 위기를 다뤄왔는데 그거 못하겠느냐" "비상기엔 거시전문가 보다 미시해결사가 낫다"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과거 한보ㆍ기아차사태 같은 특정의 국내위기가 아닌, 지금 같은 포괄적 글로벌 경제위기는 윤 장관에게도 생소한 장면일 것이다.
다음은 소통과 신뢰의 문제. 성공한 경제팀장이 되려면 두 군데의 신뢰가 꼭 확보되어야 하는데 하나는 시장이고, 다른 하나는 대통령(혹은 권력핵심)이다.
통상 시장의 신뢰만 얻으면 된다고 생각하지만, 실은 그렇지가 않다. 재정경제부장관을 두 차례나 지냈으면서도 모두 단명했던 이헌재씨가 그런 경우다. 늘 시장과 소통했고 시장은 언제나 그를 신뢰했지만, 이 전 장관은 두 번 모두 권력핵심(김대중정부의 호남실세그룹, 노무현정부의 386그룹)의 지지를 얻는 데는 실패했고, 결국 조기하차하고 말았다.
윤 장관의 경우 일단 시장은 호의적이다. 대통령의 신임도 높다고 한다. 언론과 국회쪽 반응까지 좋다니 가히 금상첨화다.
하지만 그게 다는 아니다. 그는 현 정부에 지분이 없다. 직접 정권을 창출하고 MB노믹스를 설계했던 강만수 전 장관이나 윤진식 경제수석과는 권력내 위상부터 다르다. 더구나 과거정부에서 장관(금융감독위원장)을 지낸 정치적 약점도 있다. 물론 특유의 생존력으로 극복할 것이란 관측이 많지만, 양쪽의 사랑을 함께 받는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닐게다.
우리나라에서 장관 재임기간은 경제의 순항정도와 비례한다. 이 점에서 윤 장관은 좀 '롱런'했으면 한다. 그러기 위해선 자질과 신뢰의 제약을 뛰어 넘어야 하는데, 그것은 전적으로 자신이 풀어야 할 몫이다.
이성철 경제부 차장 sc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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