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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마음속 '추모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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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마음속 '추모공원'

입력
2009.02.25 0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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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3월 31일 김수환 추기경이 경북 군위군 군위초등학교(옛 군위공립보통학교)를 방문했다. 교문 옆에 차를 세우고 황토 먼지 가득한 운동장을 걸어서 갔다. 김 추기경은 강당에 모인 아이들에게 "정직하고 성실한 사람이 되세요. 그래야 아름다워질 수 있어요"라고 말했다.

59년 만의 모교 방문은 소년한국일보의 주선으로 이뤄졌고, 어린 시절에 대한 회상은 동화작가 정채봉씨를 통해 '저 산 너머'라는 제목으로 소년한국일보에 연재됐다(93년 5~8월). 김 추기경은 "아이들을 위해서"라는 말에 천리 길도, 신문 연재도 '아이같이 반기며' 쾌락했다.

■군위군청 홈페이지에는 20일부터 '고 김수환 추기경 생가 위치'라는 뉴스가 머리에 올라 있다. 아무런 설명도 없이 약도만 덜렁 올라와 있는 것으로 보아 선종(善終) 후 급히 첨부한 듯 하다. 그 군청이 그 주변 33만여㎡(약 10만평)에 300억원을 들여 추모공원을 조성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경북도도 나서 국무총리에게 예산 지원까지 건의했다. 추모공원 얘기는 93년 모교를 방문했던 추기경이 어릴 적 살았던 집에 들렀을 때부터 논의가 있었으나 고인은 한사코 반대했다. 폐허처럼 변했던 초가집 '생가'를 복원(2006년)하는 일조차 추기경 몰래 이뤄졌다.

■가톨릭계의 공식 입장은 '명동성당 인근에 역대 교구장의 유품을 모은 박물관이 건립될 것이며, 12대 교구장으로서 추기경의 유품도 함께 전시한다'는 것이다. 또 "추모관이나 기념관 신축은 간소하고 검소하게 산 고인의 뜻에서 멀어지는 것"이라고 밝혔다.

국립민속박물관이 추기경의 장례절차를 국기기록물로 만들어 보관하겠다는 결정은 또 다른 의미를 갖기에 충분하다. 개인이나 단체가 기념관이나 추모공간을 갖는 것 역시 당연할 수 있다. 그러나 군위군청이 대규모 추모공원을 만들겠다는 발상은 추기경이 남긴 뜻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일이다.

■군위군은 대신 김 추기경이 생전에 '가장 어려운 시절을 보냈던 곳'이라며 간직했던 사랑의 일부나마 보답하는 일에 앞장서야 한다. "5학년 때 그 곳을 떠났었는데…"라고 회상하던 미소를 떠올리면 세상 어린이들에 대한 사랑의 원천이 그 곳임을 알 수 있다.

예산 300억원을 책정할 정도의 열의가 있다면 마음 속에 '추모공원'을 세울 방법은 너무나 많다. 백혈병 어린이 돕기, 국내 입양운동만 해도 추기경이 유난히 정성을 쏟았던 일들이다. P.S:군청이 공식적으로 사용하는 '생가'라는 표현은 잘못이니, 추기경이 늘 썼던 '옛집'으로 바꾸는 게 좋겠다.

정병진 논설위원 bjj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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