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경제회복을 어렵게 만들 수 있는 뜻밖의 복병으로 절약이 지목되고 있다. 특히 10년 불황 이후 지갑을 꽁꽁 닫고 사는 일본인의 사례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22일 7,870억달러에 달하는 경기부양책을 실시하는 미 정부가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일본식 절약이라고 강조했다. 지난해 4분기 미국의 저축률은 1년 전 1%에서 2.9%로 치솟았다. 일견 덜 쓰고 더 많이 저축하는 데는 문제가 없어 보인다. 하지만 타임은 "부채와 소비가 하락하는 반면 저축이 증가하면 미국 경제는 더욱 어려워진다"고 지적했다.
바로 절약의 역설(Paradox of Thrift)이다. 영국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즈의 이 이론에 따르면 모든 국민이 저축을 늘릴 경우 저축 절대액은 오히려 감소한다. 저축 증가는 기업 이익 감소→고용 감소(실업 증가)→소비 둔화→물가 추가 하락으로 이어져 경제 전체가 디플레이션의 수렁 속으로 빠져드는 것이다.
절약의 역설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가 일본이다. NYT는 "일본인은 여전히 절약 습성을 버리지 않아 또 다른 디플레이션이 올 수 있다"고 말했다. 2000년대 들어 미국과 중국에 대한 수출이 증가하면서 일본은 10년 장기 불황을 탈출했지만 2001년부터 2007년까지 1인당 소비 증가율은 불과 0.2%에 그쳤다.
다이이치 생명연구소의 히데오 쿠마미는 NYT에 "일본은 현재 두 번째 '잃어버린 10년'에 돌입하고 있다. 소비를 잃어버린 것이다"라고 말했다. 지난해 니케이 신문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일본 20대 남성 가운데 불과 25%만이 자동차 구입을 원한다고 답해 2000년의 48%에 비해 크게 하락했다. 루이비통의 판매도 2008년 10%나 하락했다.
현재 미국 내 절약 풍조가 디플레이션으로 이어지면 오바마 정부의 경기부양책도 효과를 발휘하기 어려울 공산이 크다. 1999년 3월 일본 정부는 저소득층 3,500명에게 총 7,000억엔에 달하는 상품권을 지급했지만 소비는 살아나지 않았다. 경제가 더 나빠지리라는 위기감 속에 상품권을 소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 정부는 무작정 소비를 강요할 수도 없는 형편이다. 조지 W 부시 정부는 2001년 경기 침체를 벗어나기 위해 국민에게 소비를 장려했다. 타임은 "그 덕에 수 많은 미국인들은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의 대출을 받아 주택을 구입했고 그 결과 현재의 경제 위기를 낳았다"고 지적했다.
최지향 기자 jhcho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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