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공 보러 갔다 주인공 친구에게 반한다.' 최근 뮤지컬 공연이 한창인 극장에서 종종 겪는 일이다.
최고의 티켓파워를 자랑했던 조승우씨의 군입대 이후 한국 뮤지컬계는 특정인이 도드라지기보다 여러 배우들이 두루 인기를 누리는 춘추전국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특히 뮤지컬 배우들의 실력이 전반적으로 고르게 향상되고 충성도가 높은 마니아 관객이 늘면서 주인공뿐 아니라 조역을 맡은 배우들도 역할 소화 능력에 따라 주목도가 높아지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조연의 재발견인 셈이다.
6일부터 성남아트센터에서 공연 중으로 호색한 돈 주앙의 삶과 사랑을 그린 라이선스 뮤지컬 '돈 주앙'. 일반 관객뿐 아니라 공연 관계자들이 대거 몰린 개막일 공연이 끝난 후 가장 많이 회자된 배우는 타이틀롤이 아닌, 돈 주앙의 친구이자 조언자인 돈 카를로스 역을 맡은 조휘씨였다. 전작 '김종욱 찾기'와 '마이 스케어리 걸' 디벨롭 공연 등에서 밝고 유쾌한 캐릭터를 소화했던 조씨는 탁월하게 향상된 가창력으로 역할을 안정되게 소화해 이목을 집중시켰다. 이 작품의 오리지널 연출가인 캐나다 출신의 질 마으가 첫 공연 관람 후 가장 인상 깊은 배우로 조씨를 꼽았을 정도이다.
같은 날 역시 돈 주앙의 친구인 이사벨 역으로 무대에 섰던 이지숙씨도 마찬가지. 이전까지 '파이란' '찬스' 등 소극장 뮤지컬에서 작은 역할을 맡았던 그는 '깔끔한 고음 처리가 인상적'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성공적으로 대형 뮤지컬 무대 데뷔를 마쳤다.
박건형, 이지훈씨와 함께 뮤지컬 '햄릿'의 주인공으로 활약 중인 김승대씨의 경우는 조역을 훌륭히 소화해 타이틀롤까지 꿰찬 케이스다. 2007년 '햄릿' 초연 당시 조역 레어티스를 연기했던 김씨는 공연 초반부터 주연 배우보다 더 많은 박수갈채를 받는 등 팬들의 주목을 받았고, 이에 제작진은 1월에 시작해 22일까지 숙명아트센터 씨어터S에서 계속되는 이번 재공연의 햄릿 역할을 선뜻 그에게 맡길 수 있었다.
올해 초 시작돼 3월 29일까지 한전아트센터에서 계속되는 뮤지컬 '렌트' 역시 조연 배우가 주인공보다 더 큰 관심을 모으고 있는 사례다. 뉴욕의 가난한 젊은 예술가들이 절망 속에서 사랑과 희망을 꽃피워가는 모습을 그린 이 작품에서 주인공 로저의 친구인 콜린 역을 맡은 최재림씨는 이번이 뮤지컬 첫 출연이라는 게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관객의 큰 호응을 얻고 있다. 바리톤에서 하이테너까지 폭 넓은 음역대를 소화할 수 있는 음악적 재능을 갖고 있어 '곡 해석 능력이 좋다'는 평가를 얻고 있다.
이처럼 조연이 주연 못지않은 인지도를 얻게 된 배경으로는 오디션을 통한 배우 캐스팅이 어느 정도 정착되고 있는 뮤지컬계의 최근 분위기도 빼놓을 수 없다. 가수나 TV스타를 기용하는 스타캐스팅이 확산되고 있지만 일부 대중 스타들의 기량이 기대에 못 미치는 가운데, 반작용으로 뮤지컬 배우들의 전문성이 부각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인지도는 다소 부족해도 뛰어난 실력을 갖춘 배우들이 깜짝 캐스팅되는 사례가 늘고 있다는 이야기다. '돈 주앙'의 조휘씨의 경우 이전에 숱한 오디션에서 탈락했지만 지정곡을 100번 이상 들으며 연습하는 성실한 자세로 추가 오디션을 통해 이번 돈 카를로스 역을 따냈다. 그는 최근에도 오디션을 거쳐 안중근 의거 100주년 뮤지컬 '영웅'의 조역인 조도선에 당당히 캐스팅됐다.
김소연 기자 jollylif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