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관악구의 한 주민센터. 정식 직원 12명에다 5명의 보조 직원들로 안 그래도 복잡한 사무실이 더 북적댄다. 보조 직원은 공익근무요원 2명, 행정인턴 2명, 서울시가 청년 실직자 구제를 위해 도입한 청년 공공근로요원 1명 등으로, 불리는 명칭은 달라도 모두 20대 초ㆍ중반 비슷한 또래다.
하는 일의 구분도 크게 없다. 돌아가며 컴퓨터에 자료를 입력하고, 물건 나르고, 청소 하고, 등초본 발급도 돕는다. 하나같이 허드렛일이다. 주민센터 관계자는 “보조 업무를 할 사람이 갑자기 너무 많아지니까 업무를 어떻게 나눠야 할 지 모르겠다”며 “좋은 대학 나온 사람들에게 이런 잡일을 시켜야 한다는 게 안타깝다”고 말했다.
정부가 청년층 취업난 해소를 위해 사활을 걸고 추진중인 청년인턴 제도가 고학력 대졸 청년들을 이른바 ‘알바’로 전락시키고 있다.
경력 축적과 직업 체험이라는 인턴제의 취지는 경력이나 체험과는 별 상관없는 허드렛일과 잔심부름에 여지없이 무너지고 있다.
정부가 공기업 등에 일정 비율의 인턴을 뽑도록 강제하면서 기존 계약직을 내보내는 등의 부작용도 나타나고 있다. 서울 소재 대학을 나와 코트라에서 계약직으로 근무한 김모(24ㆍ여)씨는 최근 재계약 불가 통보를 받았다.
김씨는 “통상 2년까지 연장되기 때문에 별 걱정 없이 재계약을 기다렸는데, 인사과에서 전 부서에 ‘인턴을 채용해야 하니 계약직의 재계약을 전면 중단하라’는 공문을 보냈다더라”고 말했다. 아랫돌 빼서 웃돌 괴는 셈이다.
현재 정부와 기업이 채용했거나 채용 계획 중인 청년인턴은 행정인턴 1만6,000명, 공기업 및 공공기관 1만2,000명, 중소기업 2만5,000명 등 9만여명으로 조만간 10만 명에 육박할 전망이다. 지난달 20대 실업자가 31만5,000명인 점을 미뤄보면, 산술적으로 청년 실업자 3명 중 1명에게 일자리를 줄 수 있을 만큼 큰 규모이다.
그러나 그만큼 청년층 일자리의 질은 떨어지게 된다. 이미 20대 비정규직이 113만7,000명(2008년 3월 기준)인 상황에서 인턴 10만명을 보태면 20대 취업자(지난달 기준 376만9,000명) 3명 가운데 1명이 비정규직이라는 얘기가 된다.
한국노동연구원에 따르면 현재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비율은 대략 10명 중 1명 꼴로, 일단 비정규직에 들어서면 탈출의 가능성은 거의 없다. 물론 정부는 “경제위기에 맛없는 빵이라도 굶는 것보다는 낫다”고 반박하지만, 비정규직 실태를 감안하면 이들이 향후 제대로 된 만찬을 먹을 가능성은 낮다.
한국노동연구원 관계자는 “지금과 같은 식의 인턴이라면, 내년 취업시즌 기업들이 인턴 경력자보다 2010년 대졸자를 선호할 수밖에 없다”며 “한마디로 청년들에게 실업자로 계속 지내느니 비정규직으로 살라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말했다.
때문에 전문가들은 청년 실업 해소를 위해서는 최소한 공기업 등 공공부문에서라도 인턴 확대에 급급하기보다 정규직 채용에 우선 순위를 둬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유병률기자 bryu@hk.co.kr
강희경기자 kbstar@hk.co.kr
김혜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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