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렴풋이 이사를 가던 풍경이 떠오른다. 젊은 아버지는 리어카를 끌고 젊은 어머니는 리어카를 밀다 쉬다 갔다. 셋째는 아직 태어나지 않았다. 아이 둘이 탔는데도 리어카는 넉넉했다. 이삿짐이라야 솥과 냄비, 곤로와 이불, 옷가지를 싼 보퉁이 두어 개였다. 장롱도 없었고 텔레비전, 냉장고는 그런 게 있다는 걸 알지도 못할 때였다.
한 남자와 한 여자가 만나 가정을 꾸리는 데 필요한 것은 그렇게 리어카 한 짐도 되지 않았다. 셋째는 얼마 전 연인으로부터 조금만 더 기다려달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둘 다 혼기를 놓쳐도 한참 놓친 노처녀, 노총각이라는 말도 무색한 나이였다. “오빠, 난 큰 거 안 바라, 양은냄비 하나면 돼!” 셋째는 전화기에 대고 큰소리쳤다.
정작 양은냄비 하나로 결혼 생활을 시작했던 어머니도 세상 물정 모른다며 셋째를 보고 혀를 찼다. “애는? 애는 거저루 키워?” 직장 후배에게 결혼하려면 얼마나 준비해야 하느냐고 물었더니 칠천만 원요, 한다. 서울에 작은 평수의 집을(사실은 방을) 얻을 돈이라는 것이다.
이제 서른이 된 이 젊은이, 살림은? 하고 묻자 글쎄요(당연히 살림은 신부가), 웃는다. 저축액은 목표액의 반에 반도 안 되는 금액, 부모의 도움이 없다면 그도 연인에게 기다려달라는 말만 되풀이할지도 모른다. 그날 밤 셋째는 좀 울었다.
소설가 하성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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