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노선일 수 있다고 여겨졌던 환율 1,500원이 뚫리면서, 정부도 본격적인 대책 마련에 고심하는 모습이다. 2기 경제팀 출범과 함께 시장 친화적인 환율 정책을 예고했지만, 무작정 방치만 할 수는 없는 다급한 처지. 하지만 환율 방어를 위한 '가용 실탄'이 그리 많지는 않다. 자칫 무리한 실탄 사용은 정말 큰 화를 부를 수 있다는 지적이다.
"2,000억달러 연연치 않겠다"
윤증현 기획재정부장관은 22일 국내 환율 불안에 대해 "한쪽으로 쏠림이 심하거나 투기세력이 개입하고 있다면 좌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지난 19일 국회 업무보고에서 "(외환시장에 대해) 공개적으로 말은 못하지만 그냥 가지는 않는다"고 밝힌 것의 연장선상이다.
큰 소리를 치고는 있지만, 정부의 주머니 사정은 상당히 빠듯하다. 1월말 현재 정부가 보유하고 있는 외환보유액은 2,017억달러. 정점이었던 작년 3월말(2,642억달러)에 비하면 600억달러 이상 급감했다. 정부가 시장과 한판 격전을 치른다면 2,000억달러 붕괴는 시간 문제라고 봐야 한다.
이에 대해 정부와 한국은행 모두 "2,000억달러에 연연할 필요는 없다"고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한은 고위 관계자는 "외환보유액 2,000억달러가 개입을 결정하는 데 있어 고려 대상이 될 수는 없다"고 했고, 재정부 고위 관계자도 "2,000억달러는 쓸 수 없는 돈이라는 시장 인식은 불식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속내까지 편한 것은 아니다. 가장 보편적인 적정 외환보유액 기준이라는 유동외채(1년 내 갚아야 할 외채)가 작년 말 현재 1,940억달러에 달하는 상황. 외환보유액으로 유동외채를 다 갚을 수 없는 상황이라는 불안감, 2,000억달러라는 상징성이 무너졌다는 초조함 등이 맞물리면 조그만 대외 충격에도 우리 경제의 위기는 더욱 증폭될 수 있다. 그만큼 지금 정부의 선택은 쉽지 않아 보인다.
외평채 발행 나설까
물론 정부가 확보해 둔 준(準) 외환보유액이 적지 않다. 하지만 이들 자금은 최후의 보루일 뿐, 대부분 당장 사용하기 힘들거나 사용한다 해도 득보다 실이 더 많다는 분석이다. 우선 한ㆍ미 통화스와프 자금은 300억달러 한도 중 절반 이상(163억5,000만달러)이 이미 소진된 상태. 한도를 다 채웠다가는 "더 이상 안전판이 없다"는 불안감을 조장할 수 있다.
국제통화기금(IMF) 단기유동성 지원창구 220억달러는 정부 스스로 부정적 이미지 탓에 "사용하지 않겠다"고 단언한 상태다. 한ㆍ일, 한ㆍ중 통화스와프 역시 대부분 평시 사용이 불가능하거나 달러 차입이 아니라는 점에서 당장 도움이 되지는 않는다. 한도가 1,200억달로 확대된 치앙마이 이니셔티브(CMI) 다자화기금 역시 마찬가지다.
그래서 정부가 저울질하고 있는 대안이 외국환평형기금채권(외평채) 조기 발행. 정부는 올해 60억달러 규모의 외화 표시 외평채 발행을 예정 중이다. 단지 정부가 60억달러를 추가로 확보한다는 것 외에 정부가 앞장 서서 국내 은행들의 외화 차입 길을 터주겠다는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
하지만, 작년 9월 리먼브러더스 사태 직전 외평채 발행 실패의 후유증이 아직도 채 가시지 않은 상태. 정부 한 관계자는 "가뜩이나 국제 금융시장이 갈수록 싸늘해져 가는 상황에서 작년의 실패가 또 다시 재연될 수 있다는 우려감 때문에 섣불리 나서기는 쉽지 않다"고 말했다.
이영태 기자 yt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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