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위기 속에 일자리 나누기가 세계적 관심사가 됐다. 각국 기업은 대량실직을 막기위해 임금삭감이나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다양한 형태의 일자리 나누기를 채택하고 있다.
미국의 컴퓨터제조업체 델은 감원 대신 무급휴가를 확대했으며, 시스코, 네바다카지노, 시애틀타임스, 글로벌 텅스텐 앤 파우더스 등도 노동시간 단축이나 무급휴가를 통해 일자리 지키기에 나섰다. 모토롤라, 페넥스, 브랜다이스대학 등은 임금삭감으로 해고를 최소화하고 있다.
■ 위기 넘어 경기회복에 대비
일본과 유럽의 기업들 역시 노사협의를 통해 임금과 근로시간을 줄이는 대신 일자리를 유지하는 전략을 택하고 있다. 도요타 자동차는 2월부터 두 달 동안 종업원 3만5,000명을 대상으로 11일간 휴무하고, 이중 이틀간의 임금은 20% 삭감하기로 했다.
케이단렌(일본경제단체연합회)과 렌고(일본노동조합총연합회)도 공동선언을 통해 일자리 나누기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에 착수했다. 통일 이후 노사정 대타협을 통해 일자리 나누기의 모범적 전통을 만들었던 독일에서도 폴크스바겐, 다임러, 도이체방크, 지멘스, BMW 등이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보호에 자발적으로 나서고 있다.
국내에서도 일자리 나누기가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하이닉스, 동부제철, 가온전선 등 민간기업 뿐 아니라 인천공항공사, 자산관리공사, 수출입은행 등 공기업과 금융권에서도 임금삭감과 신입직원 초봉삭감, 무급휴가 등을 통한 일자리 유지와 창출이 확산되고 있다.
정부도 노사간 자율적인 합의를 통해 임금을 삭감하고 일자리 나누기를 할 경우 한시적으로 임금 절감액의 일정비율을 비용으로 간주하는 세제상의 혜택을 주는 등 정책적 지원책을 발표했다.
고용 한파 속에 고용정책의 초점이 일자리 나누기로 모아지는 것은 당연하다. 세계적인 경기침체로 내수와 수출이 극도의 침체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어 신규 일자리 창출의 여지가 협소해진 탓이다. 일자리 나누기를 통해 해고를 피하고 숙련 인력을 확보해 경기회복에 대비하는 것은 노사 모두에게 중요한 전략일 수 있다.
그러나 일자리 나누기를 노사합의를 통해 추진하는 기업은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합의 틀이 마련돼 있지 않거나 상호 의견차이로 합의에 이르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사측은 노조의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 제안이 임금삭감 조항이 없어 진정성이 없다는 이유로 거부하고, 노측은 임금삭감으로 악용될 수 있다며 완강히 반대한다.
6노사간 협력과 신뢰 없이 사측의 일방적 고통 전가와 노측의 기득권 옹호가 평행선을 달리는 갈등구조에서 일자리 나누기는 실현되기 어렵다. 독일과 네덜란드의 일자리 나누기가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노사간 신뢰와 장기적이고 일관된 정부의 정책의지가 결합되었기 때문이다. 일자리 나누기 정책의 성공여부는 노사정간 협의체제의 구축에 있다.
■ 노사정 합의 여부에 성패 달려
노사정 합의는 대기업과 중소기업, 정규직과 비정규직, 청년층과 장년층간 일자리 나누기를 포괄하는 사회적 일자리 연대라는 관점에서 구축돼야 한다. 사회적 합의에 기초하여 핵심 관건인 노동시간 단축으로 인한 임금감소의 폭과 임금 손실분에 대한 보전방식에 합의가 이루어져야 한다.
이는 정책의 실현 가능성 뿐 아니라, 침체에 빠진 내수회복을 위해서도 중요하다. 요컨대 일자리 나누기가 경제적 효율성과 사회적 형평성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소득보장 등 사회보장정책과 상호 보완적으로 작동하도록 설계해야 한다.
권우현 한국고용정보원 인력수급전망센터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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