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쉬운 게 한 가지 더 있다. 명동성당 종탑 십자가에 달이 걸려 있는 야경을 못보게 된 것이다. 달 밝은 밤에 외출했다 돌아올 때면 그 달빛 야경을 감상하기 위해 언덕을 오르락 내리락하곤 했다.”
고 김수환 추기경이 1998년 5월 서울대교구장을 물러나며 털어놓은 소회다. 김 추기경이 마산교구장에서 서울대교구장으로 발령받아 봉직한 지 꼭 30년 만이었다. 20일 장례미사를 끝으로 김 추기경은 제2의 고향과도 같은 명동성당과 영원히 작별했다.
명동성당과 함께했던 김 추기경의 30년 세월은 개인사로서뿐만 아니라 한국 현대사에 있어서도 격동의 시기였다. 1971년 명동성당에서 열린 성탄 미사에서 김 추기경이 비상대권을 준비하려는 박정희 전 대통령을 정면 비판한 이래 명동성당은 민주화운동의 성지였다.
유신통치가 극에 달했던 1976년 3월 천주교계와 개신교계는 명동성당에서 함께 정권퇴진을 요구하는 선언문을 낭독했다. 1987년 6월항쟁 당시 명동성당으로 피신한 시민과 학생들을 체포하려는 경찰에 대해 김 추기경이 “먼저 나를 밟고 지나가라”고 일갈한 것은 유명한 일화다.
명동성당에서의 마지막 강론이 된 1998년 5월 축성 100주년 경축미사에서 김 추기경은 “명동대성당은 우리 겨레와 기쁨과 고난을 함께했습니다.
지금까지 이 사회를 밝히는 빛과 등대로 존재해 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서 있어야 합니다”라는 메시지를 남겼다. 고인을 마지막으로 보기 위해 명동성당으로 몰려든, 사상 유례 없는 40만 시민들의 추모 물결 속에 김 추기경은 이제 그곳을 떠나갔다.
이왕구 기자 fab4@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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