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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월가의 사형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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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월가의 사형수들

입력
2009.02.23 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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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루이지애나 빈민가에서 희망의 집을 운영하는 한 수녀가 어느 날 한 통의 편지를 받는다. 데이트 중이던 두 연인을 폭행하고 잔혹하게 살해한 혐의로 사형선고를 받은 죄수가 감옥생활의 외로움과 정신적 고통을 달래달라며 면회방문 혹은 편지라도 써달라고 애원하는 내용이었다. 고심 끝에 그를 찾아온 수녀에게 사형수는 자신의 무죄를 주장하며 도와달라고 한다. 그를 측은하게 여긴 수녀는 이후 변호사와 함께 백방으로 뛰며 그를 구하려고 노력하지만 잔혹한 살해장면 공개와 그의 불량한 태도로 인해 결국 사형집행일만 남겨두게 된다.

▦ 사형집행 6일 전, 수녀는 다시 사형수로부터 사형장까지 함께하는 영적 안내자가 돼달라는 부탁을 받는다. 주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수녀는 간청을 받아들여 남은 시간을 함께 보낸다. 수잔 서랜든과 숀 펜이 열연한 영화 'Dead Man Walking((1995)'의 줄거리다. 이 영화는 사형제도 찬반 양론의 어느 쪽도 편들지 않으면서 삶과 죽음, 죄와 벌 등 묵직한 주제를 담담하고 다양한 관점으로 그려내 평단의 큰 호평을 받았다. 제목은 사형집행장에 들어오는 죄수를 지칭하는 교도관들의 은어라는데, 실화에 근거한 동명 원작 소설에서 따왔다.

▦ 같은 제목의 또 다른 실화의 영화가 뉴욕 월가를 배경으로 만들어질지도 모르겠다. 뉴욕타임스가 얼마 전 미국의 일부 대형 은행들의 부실이 지급불능 상태에 빠질 만큼 심각하다며 이들을 'Dead Man Walking'에 비유해서다. 'Mr. 둠'의 일원인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는 "대출 손실과 자산가치 하락으로 미국 금융회사의 손실규모가 최대 3조6,000억달러까지 늘어날수 있다"고 전망했다. 세계 금융시스템까지 망가뜨린 그 회사 CEO들은 제 몫을 알뜰히 챙겼다. 죄질의 비열함이나 뻔뻔스러움은 강간ㆍ살인을 저지른 사형수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

▦ 영화와 달리 이들에게 위안을 줄 수녀는 어디에도 없다. 그렇다고 그들을 섣불리 형장으로 끌고 갈 수도 없다. '너무 커서 어찌할 수 없는' 그 은행들이 무너지면 얼마나 많은 사상자가 생길지 가늠하기 힘든 까닭이다. 그래서 나온 것이 시장경제적 의미의 사형인 은행 국유화 방안이다. 지난 주말 미 상원 은행위원회 위원장의 입에서 이 방안이 거론됨으로써 월가는 또 한번 충격에 빠졌고, 씨티은행 등의 주가는 담뱃값 정도로 추락했다. 백악관은 이를 부인했지만 동유럽, 서유럽으로 마구 번져가는 금융위기가 어떤 괴물을 낳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이유식 논설위원 y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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