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 22세기 사람들이 김수환을 어떻게 기억해주기를 바라나?"
"글쎄…. 참 못난 사람이라고 기억하지 않을까? 훌륭하지는 않아도 조금 괜찮은 구석이 있는 성직자로 기억해주길 바라는 마음이 있기는 한데."
고 김수환 추기경이 말년에 자신의 인생을 돌아본, 진솔하기 그지없는 육성이 공개됐다. 2007년 초여름 평화신문과 가진 인터뷰 내용으로, 2004년 발간된 고인의 유일한 회고록 <추기경 김수환 이야기> (평화신문ㆍ평화방송 발행) 증보판에 실렸다. 추기경>
증보판은 김 추기경 선종 후인 지난 18일 발간됐으며, 여기에는 인터뷰를 비롯해 김 추기경이 2007년 7차례에 걸쳐 자신의 삶에 관해 구술한 내용이 새로 포함됐다.
김 추기경은 '늙으면 섭섭한 게 많다고 하는데?'라는 질문에 "나는 청력이 떨어져 보청기를 껴도 말이 잘 안 들릴 때가 있다. 나를 찾아온 손님이 자기들끼리 뭔가 얘기를 주고받으면서 웃는데 난 영문을 몰라 소외감(?)을 느끼곤 한다.
그러나 어쩔 수 없는 노릇"이라고 답했다. 또 연세 많은 분들이 '내가 어서 죽어야지'라고 하는 말은 거짓말이라고 하는데 그런 거짓말을 한 적이 있냐는 질문에는 "매일 한다.(웃음) 요즘 사람들이 '건강하게'라는 말은 빼고 '오래 사십시오'라고 인사하는데, 장수(長壽)가 육체적으로 얼마나 고달픈지 모르고 하는 인사 같다. 요즈음 대학입시를 앞둔 수험생 심정"이라고 말했다.
살아오면서 가장 잘했다고 생각하는 일을 묻는 질문에 김 추기경은 "신부가 된 것이다. 어머니에게 등 떠밀려 신학교에 들어가기는 했지만"이라고 답했다. 사제직 외에 동경한 것으로는 '코흘리개 시절 꿈은 읍내에 점포를 차려 돈을 버는 것'이었고 유학시절에는 '오케스트라 지휘자도 동경했다'고 말했다.
김 추기경은 또 좋아하는 시로 윤동주의 '별 헤는 밤'을 꼽았지만,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로 시작하는 '서시(序詩)'는 "좋아하지만 감히 읊어볼 생각을 못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애창곡은 '사랑해 당신을', 잡기로는 "신학생 시절 장기를 잘 뒀고 화투는 고스톱보다는 육백을 좀 쳤다"고 했다.
'새내기 직장인이라면 연봉을 얼마나 기대하겠나'라는 질문에 김 추기경은 "1,000만원 정도"라고 답한 뒤 "한 달에 80만원 정도면 밥 먹고 전철 타고 다니고, 물도 사 마시고… 그래도 20만원 정도 남을 것 같다"고 했다.
'추기경 김수환은 OO다'라는 문장의 빈칸을 채워달라는 질문에는 "추기경 김수환은 '바보'다. 하느님은 위대하시고 사랑과 진실 그 자체인 것을 잘 알면서도 마음 깊이 깨닫지 못하고 사니까"라고 답했다.
김 추기경은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것은 신뢰와 정직이라고 했다. 그는 2005년 12월 당시 황우석 교수의 배아줄기세포 진위 논란과 관련해 대담 도중 눈물을 흘린 데 대해 "내가 진정으로 가슴아파한 것은 우리 사회의 진실성 결여"라면서 "정직이 사라진 사회, 인간 생명을 지키지 못하는 사회에서 경제성장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김 추기경은 "대구에서 신부 생활을 할 때 행려자와 장애인들 속으로 투신하는 문제를 고민한 적이 있었지만 머뭇거리다 주교로 임명되고 말았다"면서 "가난한 이들과 살고 싶었음에도 그렇게 살지 못한 것은 주교나 추기경이라는 직책 때문이 아니라 나 스스로 용기가 없어서였음을 고백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남경욱 기자 kwna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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