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오픈을 사흘 앞둔 22일, 화가는 강화도 마니산에서 전화를 받았다. "기를 받기 위해서 새벽부터 산을 올랐다 하산하는 길"이라고 했다. 화가 여운(62ㆍ한양여대 교수)씨는 25일부터 3월 2일까지 서울 관훈동 갤러리이즈에서 열리는 '한국미술상 수상기념전'에 지리산 그림을 여럿 내놓는다. 오랫동안 인간과 자연의 모습을 한국적 관점에서 탐구해온 그가 지리산을 그린 시간은 벌써 10년에 가깝다. 지리산에 오른 횟수는 셀 수 없을 정도. 2주 전에도 다녀왔다고 한다.
"여름의 지리산은 크기만 하지 특별한 게 없어요. 그런데 겨울, 특히 1월 가장 추울 때 잔서리가 있을 때의 지리산에서는 그 속살이 보입니다. 그 감동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지요. 인간은 정말 하찮은 먼지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저절로 깨닫게 됩니다."
그의 말처럼 그림 속 지리산은 대부분 흑백 톤의 겨울산이다. 한지에 시커먼 목탄으로 그린 지리산은 수묵화처럼 아득하고 깊게 번진다. 거친 질감이 그대로 느껴지는 겨울 지리산은 쓸쓸해 보이지만, 왠지 푸근하다. 최근 그의 지리산 그림은 유채로도 바뀌었다. 하지만 언뜻 보면 여전히 한지에 목탄으로 그린 것으로 착각할 만큼 깊이감과 생동감이 살아있다.
'지리산 1-1'과 '지리산 1-2'는 두 개의 지리산을 붙인 작품이다. 백운산과 금대암, 즉 남쪽과 북쪽에서 바라본 지리산 천왕봉의 모습을 나란히 연결시켰다. 남과 북의 화합을 말하는 듯하다. 300호짜리 대작인 '사계'는 지리산의 4계절을 표현한 것이다. 그간 고집했던 흑백 톤에서 벗어나 과감하게 녹색, 주황색, 보라색 등 색채감을 입혔다.
여씨는 "지리산이 주는 감동을 어떻게 조형적 언어로 표현할 수 있을까 하는 오랜 숙제를 풀고 있다"면서 "기본적인 소묘 작업을 거쳐 이제는 보다 자유로운 방식으로 풀어내는 중"이라고 말했다. 그는 "직관에 대한 절제가 아직 잘 안 된다. 감정을 보다 절제하고 단순화시키는 게 남은 과제"라고 덧붙였다.
한동안 자신의 작업보다는 민족미술인협회 회장 일 하랴, 늘 인사동에서 미술계뿐 아니라 문화계 사람들 만나고 술 마시는 일 더 좋아해 바빴던 그는 2년여 전부터 본격적으로 붓을 잡고 신작을 선보이고 있다. 한국적 정서가 가득한 그의 '지리산' 연작은 해외로도 나간다. 3월 독일 칼스루에에서 열리는 아트페어에 출품되고, 11월 도쿄 전시에서도 선보인다. (02)2003-8392
김지원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