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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은의 名品 먹거리] 녹차밥…녹차 케이크…녹차 소면, 입안에 초록봄물 들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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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은의 名品 먹거리] 녹차밥…녹차 케이크…녹차 소면, 입안에 초록봄물 들 듯

입력
2009.02.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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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어여쁜 모습을 유지하는 여배우들은 나같은 보통 여자에게 선망의 대상이다. 집 앞 마트를 가든, 아이를 데리고 놀이터에 산책을 가든 그녀들의 모습은 모두의 관심을 끈다. 그런 관심 때문에 긴장을 풀지 않아서일까. 여배우들은 나이가 들어도 몸매나 피부가 여전한 이들이 많다.

그녀들에게 미용 비결을 묻는 인터뷰 기사를 종종 접할 때면, 저마다의 노하우 가운데 몇 가지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는데…. 긍정적인 마음가짐, 편식하지 않기, 채소 위주의 식생활 등과 더불어 이것이 꼭 등장한다. 하루 중 틈틈이 마시고, 식후에 마시고, 밥 생각날 때마다 마시고, 속이 더부룩할 때 마신다는 이것, 바로 녹차다.

인생을 닮은 녹차

녹차는 말 그대로 '초록빛 차'. 발효시키지 않은, 잎사귀 그대로를 파랗게 말린 형태를 말한다. 찻잎의 파란 기운을 유지하도록 '덖는' 과정을 거치게 되는데, 열을 가한 무쇠솥 등에 찻잎을 물 없이 넣고 천천히 볶는 과정을 말한다. 이렇게 하면 찻잎에 숨어 있던 수분만으로 볶아지면서 잎사귀 빛의 변색을 유발하는 산화 효소가 파괴된다.

재미있는 것은 이 '덖는' 과정을 한자로 '살청(殺靑)'이라고, '푸름을 죽인다'는 말을 쓴다. 푸름을 죽이는 과정을 통해 본연의 푸름을 오래 간직할 수 있다는, 내게는 무언가 깨달음을 주는 말이기도 하다. 푸른 기운이 뻗쳐 나가도록 방치하지 않고 적당한 푸르름을 유지하도록 오히려 참고 거르고 죽이면 더 오래가는 빛으로 거듭난다는 것일까. 이래저래 차를 만드는 일이나 마시는 일은 천방지축으로 생각 없이 사는 도시인을 잠깐이나마 '생각'하게 만드는 고마운 일이다.

녹차나 우롱차나 홍차가 다 같은 잎인데, 녹차는 거의 발효를 않거나 미약한 정도로 가발효만 하고, 우롱차는 반만, 그리고 홍차는 완전히 발효한 것이다. 찻잎의 발효 정도를 알면 내 컨디션에 따라 차를 맞춤으로 선택할 수 있겠다.

그 가운데 녹차는 다시 우전, 세작, 중작, 대작 이렇게 나눌 수 있다. 잎을 딴 시기별로 기억하면 이해가 쉬운데, 가장 먼저 딴 첫봄의 여린 잎이 우전, 늦어도 5월 초순 안으로 딴 것이 세작, 5월 중 가장 푸르름이 강할 때 따낸 잎은 중작, 그 이후로 거둔 것이 대작이다.

이 또한 나를 생각하게 만드는 중요한 부분이다. 초봄의 순수함을 간직한 우전차는 쓴 맛이 거의 없고 은은하며, 세작은 단맛이 우러나고, 중작은 씁쓸하면서도 맛이 강하게 치고 올라올 수도 있으며 끝으로 따는 대작은 더욱 강한 맛이니. 녹차를 구분 짓는 시기나 시기별로 다른 맛의 특징은 인간과 별반 다르지 않음을 알 수 있다.

10~20대는 우전, 30~40대는 세작, 장년층은 중작, 노년층은 대작이라 비유한다면 억지일까? 아무튼, 이렇게 녹차 잎의 종류에 따라 맛이 다르기 때문에 여린 잎은 비교적 낮은 온도의 물에서 천천히 우려야 맛이 들고, 많이 자란 잎일수록 고유의 기운이 강해서 높은 온도의 물로 짧게 우리는 것이 지나치게 쓴 맛을 잡는 비결이란다.

미용과 건강 도우미

찻잎을 따는 시기가 늦어질수록 쓴 맛이 강해지는데, 이 쓴 맛은 바로 '카테킨'이라는 성분에서 나온다. 카테킨은 몸의 노화를 촉진하는 활성 산소를 억제하고, 지방이나 콜레스테롤을 체외로 배출하는 역할을 한다. 주로 기름진 음식을 먹은 후, 또는 다이어트의 목적으로 차를 마실 때 '카테킨'이 느껴지는 차를 선호하는 모양이지만, 정작 차 맛 자체를 즐기는 사람들은 부드러운 맛에 한 표를 던진다고.

녹차에도 카페인이 숨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물론 커피에 함유된 '지용성' 카페인에 비해 중독성은 덜 하다고 하지만, 밤에 잠을 못 이루고 신경이 예민한 사람이라면 수시로 녹차를 마시는 습관이 어떨지 모르겠다. 또, 녹차는 몸의 열을 빼주는 차가운 기운을 가진 식품이기 때문에 몸이 찬 사람도 녹차 마시는 횟수를 제한하는 것이 좋다.

녹차를 좋아하는 나는, 종종 '녹차 밥'이라 하여 밥물을 잡은 솥에 어린 녹차 잎을 솔솔 뿌려 밥을 짓기도 한다. 입맛 없는 봄에 이렇게 녹차 밥을 지으면, 푸릇한 여린 잎이 쌀밥을 뒤덮어 작은 동산을 만든다. 아니면 녹차 우린 물을 그대로 반죽에 이용한 녹차 케이크. 녹차 케이크는 녹차 맛을 싫어하는 아이들과 함께 만들면 녹차와 친해지는 계기로 삼을 수 있다.

녹차 케이크를 만들 때, 녹차 우린 물과 물에 불어 부드러워진 잎사귀까지 몽땅 반죽에 넣어야 완성된 빵의 질감이 생생해 보인다. 케이크에서 더 강한 녹차 맛이 나길 원한다면 녹차를 가루 형태로 만든 '말차'나 시중에 판매되고 있는 '가루녹차'를 반죽에 섞어 넣으면 된다.

가루녹차는 수제비 반죽에도 넣을 수 있고, 휘핑크림을 칠 때나 떠 먹는 요거트 위에 솔솔 뿌려 먹을 수 있으니, 가격은 만만치 않지만 한 통 정도 구비해 두면 유용하다.

아예 국수 제조 과정에 녹차 성분을 넣은 '녹차 면'도 요즘 눈에 자주 보인다. 녹차 소면은 맑은 간장 국물에 말아 후룩후룩 먹으면 뒷맛이 깔끔하다. 녹차에는 레몬의 대여섯 배 분량의 비타민 C가 들어 있다. 거기다 봄의 기운까지 함뿍 담겨 있으니 까딱까딱 졸음이 올 때 특효일 것이다. 예뻐지게 만들고, 정신도 맑게 해 준다니 차로, 면으로, 케이크로 올 봄에는 국산 녹차를 자주 먹고 마셔보자.

사진 임우석

박재은 음식 에세이 (밥 시)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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