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키 루크 자기 이야기구먼." 영화 '더 레슬러'의 시사회 반응은 이랬다. 늙고 지친 왕년의 스타 레슬러를 연기한 미키 루크. 1980년대를 경험한 사람이라면 '보디 히트' '나인 하프 위크' '와일드 오키드'에서의 뜨거운 눈빛의 남자를 기억할 것이다. 당대의 섹스 심벌이었던 그는 희대의 풍운아였다. 1991년 할리우드를 떠나 프로 권투선수로 활동했다. 음주벽, 여성 편력과 추문, 폭력 전과, 두 번의 이혼 등 상처를 안은 채 그는 잊혀진 이름이 됐다. 권투로 일그러진 얼굴을 되찾으려 받았던 성형수술의 부작용으로 젊은 시절의 파릇한 외모도 잃고 말았다.
'더 레슬러'의 '랜디 더 램 로빈슨'은 그러한 미키 루크였기에 생생하고 눈물겹다. 약으로 버티며 링에 오르는 50대 레슬러 랜디는 "커트 코베인(얼터너티브 록밴드 '너바나'의 보컬) 때문에 망쳤어. 음악은 역시 80년대"라며 '그 시절'을 그리워하고, 부업으로 일하는 마트에서도 이름표에 예명 '랜디'를 고집한다. 하지만 그 시절을 흥청망청 보낸 그에게는 남남처럼 지내는 딸과 트레일러 집, 그리고 상처만이 남아 있다. 서먹하기만 한 딸과의 관계를 회복하려 저녁 약속을 했지만 제 버릇 못 고치고 술에 취해 뻗어버린 행태조차 미키 루크의 실제 삶이 겹쳐 보이지 않을 수 없다.
영화에서 랜디는 심장병으로 링을 떠나야 하지만 링 밖의 세상이 더 두렵다. 링 위에서 온몸에 철심을 박고 면도칼로 얼굴을 긋는 것보다, 마트에서 자신을 알아보는 사람에게 샐러드를 포장해주는 일이 더 어려운 것이다.
근육을 15㎏이나 키우고 훈련을 받아 실제 관중 앞에서 시합을 한 미키 루크는 곧 랜디였다. "세상이 나를 폐물 취급해도 나는 링을 떠날 수 없다"며 목숨을 건 마지막 한 판에 도전하는 랜디는 바로 미키 루크였다.
미키 루크는 이 영화로 골든글로브, 영국아카데미, 그리고 각지 영화비평가협회에서 남우주연상을 휩쓸었다. 22일(현지시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오스카상까지 거머쥔다면 그는 브루스 스프링스틴이 지은 영화 주제곡을 노래하리라. "피를 쏟고 쓰러져야 그들은 환호하는데 내게 뭐를 더 하란 말이요? 내가 뭘 더 할 수 있겠소?"
대런 아로노프스키 연출. 3월5일 개봉.
김희원 기자 h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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