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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감동에 목마른 국민

입력
2009.02.23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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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퇴근길 서울 용산역 앞에 버스가 잠시 머물 때 철거민 진압 참사 현장을 바라본다. 한 달이 지난 어제까지 아무런 변화가 없다. 경찰이 황망히 놓고 간 골목길의 전경버스도 그대로 방치돼 있었다. 큰 길가 희생자들의 빈소엔 여전히 촛불이 켜져 있다. 당연히 변화가 있어야 할 현장에 아무런 변화가 없는 것, 그것이 오히려 새로웠다.

정부의 방침이 그런가 보다. 그저 보지 못하는 척 뭉개고, 버티다 안될 듯 싶으면 꼬리나 끊어내고, 요구가 거세지면 장ㆍ차관 몇이 모여 대책이나 급조하고, 그러다 술자리에서 화제 돌리듯 “아, 아, 이제 경제 살리기 얘기나 합시다”며 정색을 한다. 상대가 제풀에 지쳐 포기하기를 기다리고 있다. 뭔가 앞서서 이끌고 해결하겠다는 의지는 없고, 그저 쓰레기만 치우고 이삭만 줍겠다는 방침인 듯하다.

■ 읍참마속 대신 희생양만 양산

용산 참사로 변한 것은 경찰청장의 이름 뿐이다. ‘떳떳한 내정자’로 한나절 밖에 지내지 못했던 김석기씨의 경우, 이임식장에서 이례적으로 받았던 부하들로부터의 신뢰와 애정에도 국민들은 별다른 아쉬움과 감동을 느끼지 못했다. 정부가 그를 ‘읍참마속(泣斬馬謖)’의 마속이 아니라 ‘희생양’의 양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도의적 책임을 묻고자 했다면 피해자들의 마음이 식기 전에, 국민의 안타까움이 가시기 전에 물었어야 했다. 수사결과에 따라 법적 책임을 묻겠다면 그에 합당한 조치를 했어야 했다. 청와대는 법적 판단이 끝난 뒤 도의적 책임을 물었다. ‘그것 봐, 우린 아무런 책임이 없어. 하지만 우리쪽에서 이만큼 양보했으니, 앞으로 혼이 날 각오를 해’라고 으름장을 놓는 정도로 국민은 받아들였다.

얼마 전 또 하나의 희생양이 생겼다. 용산 참사와 연쇄살인 사건을 둘러싼 청와대의 홍보지침 때문이다. 인터넷에 떠돌던 익명의 ‘미네르바’도 족집게처럼 잡아내는 세상에 ‘청와대발(發)’이 공공연하게 적힌 이메일이 있는데도 언론이 증거를 공개하기 전까지 ‘아니다 모른다’로 일관했다. 해명도 때늦었지만, 청와대 행정관이 사적으로 그런 메일을 경찰청에 보낼 수 있다면 더 큰 문제다.

결국 그는 ‘눈치가 너무 빨랐고 충성심이 과했던 죄’로 청와대를 떠났는데 그것으로 끝이다. 사의를 표명했고 사표를 수리했다는 것이 전부다. 그의 홍보지침과 같은 맥락으로, 그저 다른 사건이 터져서 국민들의 관심이 돌아가기만 기다린다. 국민의 불만과 의구심을 키울 만큼 키워놓고, 뒤늦게 희생양 하나 추렴해 내놓는 꼴이니 감동은커녕 일말의 수긍조차 얻기 어렵다.

정부가 언론이나 국민과 갈등을 빚는 사안이 생겼을 때, 관계자들은 항상 “여러분들이 잘 몰라서 그러는데…”하며 답답해 한다. 국가를 위해, 경제를 살리기 위해, 법질서 확립을 위해 대통령과 청와대가 다 알아서 잘 하고 있다는 것이다. 무력진압의 불가피성이나 청와대 전산망의 특성을 몰라서 그런다고 오히려 불만이다. 김석기 내정자, 청와대 행정관도 마음이 내키지 않지만 희생양으로 삼아 주었다는 식이다.

새 정부 출범 1년 동안 가장 흔하게 쓰인 말 가운데 하나가 소통이다. 국민도 그것을 원하고 정부도 그것을 원하지만 가장 부족한 것 또한 그것이다.

청와대 실정을 몰라서, 국민 사정을 몰라서 소통이 안 되는 게 아니다. 정부와 국민 사이가 메말라 버린 것은 감동이 없기 때문이다. 인정할 것은 인정하고, 사과할 일은 사과하고, 앞으로 잘하겠다고 다짐하는 겸손이 없다. 희생양만 속출할 뿐 감동이 있을 수 없다.

■ 겸손한 마음 없인 감동도 없어

김수환 추기경이 떠나면서 우리 사회에 새로운 감동이 피어나고 있다. 종교와 계층을 불문하고 기적 같은 추모행렬이 이어진 데는 “나는 바보야”라는 그의 겸손에 대한 감동이 컸을 것이다. ‘나는 옳은데 국민이 몰라줘서, 우리는 잘하는데 언론이 오해를 해서…’ 따위의 자만으론 감동을 이끌 수 없다.

정병진 논설위원 bjj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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