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치기 좋아하는 12살 아들과 조용히 계시기 좋아하는 우리어머님. 보통은 반나절을 동거해야 합니다. 바로 이웃에 살고 있어서 아들이 할머니 집에 머무르기를 더 좋아하거든요. 요즘 같은 방학에는 아들은 아예 주거지를 할머니 댁으로 옮겨 놓고있습니다. 그런데 두 사람의 동거 동태를 살펴보면 친구도 그런 악질 친구 사이가 없습니다.
“할머니! 나 라면 먹을 건데….” “에잉~, 할미는 밀가리 음식 싫어.” “진짜지? 나 먹는 거 보고 달라고 하지마~. 절대 안 줘” “그랴, 너나 많이 처먹어”(두 사람은 욕도 art로 합니다) 이렇게 끝날 것 같은 대화는 아들이 라면을 끓여 식탁에 앉는 순간 전쟁모드로 변합니다.
“나 한 젓가락만 먹어볼 겨.” “안돼, 할머니! 나 먹을 것도 모자라. 좀 전에 분명히 안 먹는댔잖아.” “그럼 국물 남겨둬. 할미 밥 말아 먹을 겨.” “할머닌~, 라면은 국물이 핵심이야, 국물 빠지면 시체지. 안돼!” “저런, 숭악한 넘을 봤나. 그럼 할미 피자 시켜 먹을겨. 네놈 껄떡대지 말어!” “어? 할머니 그건 반칙이지~. 그럼 나 집에 간다?”
그렇게 한참을 싸우다 급기야 라면 국물에 서로 숟가락들을 꼽고 식기 쟁탈 모드로 돌입합니다. 결과는 뒤엎기로 식탁은 난장판이 되고 맙니다. 그 사이에 끼어 들어 아들을 야단치고 싶어도 저것도 소통이려니…, 그냥 못 본 척 지나칩니다. 가끔 아들이 좀 지나치다 싶으면 불러 타이르지만 매번 지적하지는 않습니다. 그건 저희 어머님이 어린손자와 즐기시려고 하는 놀이란 걸 알기 때문입니다.
어머님은 “나이 들수록 젊은 애들과 놀아야 젊어진다”며 손자와 손 잡고 슈퍼가기를 좋아하시고 노래방 가기도 좋아하십니다. 원더걸스의 ‘텔미’를 어머님이 배우시고 ‘흑산도 아가씨’를 아들이 배웁니다. 손자 꼬임에 빠져 컴퓨터를 사신 뒤로는 불리해질 때마다 막강한 무기로 사용하십니다. “내 컴퓨터 쓰지마!” 어머님의 이 한마디면 아들은 깨갱~ 게임 끝!이거든요.
이 못 말리는 동거가 언제까지 지속될지, 곧 다가올 아들의 사춘기가 할머니와의 우정을 슬그머니 저버리진 않을지 걱정이 되긴 하지만 두 사람은 아직은 이 세상 누구도 갈라 놓을 수 없는 끈끈한 우정으로 살아갑니다. 두 사람의 사랑이 부럽기조차 합니다.
아들아, 네가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할머니를 향한 사랑, 그 마음 부디 오래 오래 가거라. 그리고 어머님, 녀석이 버릇없으면 혼내주기도 하세요. 특히 컴퓨터 무기때문에 제가 중간에서 살짝 힘들어요.
(경기 성남 - 김성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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