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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완벽주의자' 불행 피하니 등 뒤에 또다른 불행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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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완벽주의자' 불행 피하니 등 뒤에 또다른 불행이…

입력
2009.02.23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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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트리샤 하이스미스 지음ㆍ민승남 옮김

민음사 발행ㆍ376쪽ㆍ1만2,000원

“일부 새로 자란 덩굴이 연못을 가로질러 다른 덩굴들 사이로 파고들어 있었다. 제초제 때문에 더 튼튼해지기라도 한듯 줄기가 플라스틱 빨랫줄처럼 질겼다.” (‘연못’)

세 달 전 남편을 비행기 사고로 잃은 프리랜서 저널리스트 엘리노어. 기분을 전환하기 위해 네 살된 아들 크리스와 함께 뉴욕을 떠나 교외의 주택으로 이사한다. 이상하게도 새 정원의 연못이 눈에 밟히는데…. 통증처럼 엄습하는 불안감에 엘리노어는 연못의 물을 다 빼버리지만 다음날 물은 다시 차오르고, 물을 정화하기 위해 잉어를 풀어놓자 잉어들은 배를 뒤집고 수면 위로 떠오른다. 연못가로 다가가지말라고 경고했건만 크리스는 허망하게도 그 연못에 익사하고 만다. 아들을 집어삼킨 연못으로 걸어 들어가 덩굴뿌리를 미친듯이 파헤치는 엘리노어의 모습은, 마치 뭉크의 ‘절규’를 보는 듯 가슴을 서늘하게 한다.

이처럼 불행을 피해 달아났으나 또다시 커다랗게 입을 벌리고 있는 또 다른 불행 앞에 무력하기 이를 데 없는 인간의 모습은, 영화 ‘태양은 가득히’의 원작자로 유명한 퍼트리샤 하이스미스(1921~1995ㆍ사진)가 즐겨 다룬 소재다. 그녀의 작품집 <완벽주의자> 에 수록된 29편의 단편들은 명징한 의식의 표면 아래 또아리 틀고 있는 악몽 같은 공포와 불안감에 대해 예민한 촉수를 뻗치고 있다.

그녀의 작품에 강박증 환자와 편집광적인 인물들이 자주 출몰하고, 범죄와 살인 등의 소재가 빠지지 않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 순결 이데올로기에 집착해 딸들에게도 이를 강요했다가 딸들의 반항으로 반 미치광이가 되어버리는 부모가 등장하는 ‘내숭쟁이’, 초대형 냉장고와 믹서, 갖가지 크기의 냄비와 프라이팬을 준비하고 있지만 한사코 손님 맞기를 거절하는 신경질적인 여주인공이 등장하는 표제작 등이 그렇다. 손끝 하나 까딱 않는 아내에게 일방적인 헌신을 바치던 사내가 교묘한 방법으로 아내를 살해한다는 내용의 ‘누워만 지내는 여자’, 다른 남자들과 친하게 지낸다는 이유로 무대 위에서 연인에게 목이 졸려 살해당하는 댄서의 이야기인 ‘댄서’ 같은 작품들은, 말하고 싶지만 말할 수 없으며, 실행하고 싶지만 실행할 수 없는 인간의 억압 심리를 섬세하게 묘파하고 있다.

이왕구 기자 fab4@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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