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정부가 1년을 맞았다. 그간의 경과에서 국민들은 현 정부의 능력과 실체를 웬만큼은 파악한 것 같다. 너무 이른 감이 있지만, 어쩔 수 없이 이제 국민들은 새로운 시대를 감당할 세력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공은 다른 곳으로 넘어가고 있다. 넘겨진 공을 받을 곳으로는, 여당 안의 비주류 세력과 진보개혁세력을 떠올리게 된다.
대안 없는 이명박 비판 남발
그런데, 민주노총과 전교조가 성폭행 미수 사건에 함께 거론되면서 진보세력의 위신은 큰 타격을 입었다. "뜻밖의 일"이라기보다는 "올 것이 왔다"는 반응이 많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김금수 전 노사정위원장은 이념과 노선, 전략적 목표의 부재를 말하는데, 정곡을 찌른 지적이다.
필자는 진보세력이 다수 국민들에게 다가서는 대안적 프로그램을 부각시키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이야기하고 싶다. 진보세력은 이명박 정부에 대해 강력한 비판의 말들을 쏟아냈다. 그러나 비판의 기준, 즉 경쟁하는 프로그램을 제시하는 경우는 많지 않았다. 치료법 없는 진단의 남발은 진단 자체의 신뢰도를 떨어뜨리기 마련이다.
예를 들어보자. 흔히 진보진영에서는 위기의 원인이 '신자유주의'라고 지적한다. 그런데 지식인들 사이에서 오가는 추상적인 이야기라면 모를까, 현실의 정책 수준에서 '신자유주의'라는 개념은 대단히 애매하다. 모든 나쁜 것의 책임을 홍두깨 방망이 하나에 지우는 것을, 생활인의 감각으로는 받아들이기 어렵다.
'신자유주의 반대'를 좀더 구체화해서, 상품시장과 자본시장의 개방 축소, 국가 규제 강화, 민영화 반대, 복지정책 확대 등으로 말하면, 처방의 현실성에 대한 의문은 다시 또 늘어나게 된다. 개방 축소는 성장 감소를 가져올 것인데, 그러면 민생은 어찌 되는 것인가? 과연 국가부문을 확대하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가? 어떻게 정부가 적절한 수준에서 행동하도록 유인하고 통제할 것인가?
진보세력은 정부정책의 본질을 폭로하는 데에 많은 힘을 쏟는다. 그러나 국민들이 정부의 무능과 계급적 성격에 대해서 잘 모르고 있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이명박 정부는 '작은 정부'를 내세우며 출범했지만, 미증유의 위기를 맞아 자신들의 신념과는 달리 '큰 정부'의 역할을 수행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정부는 재정 안정성은 잠시 뒤로 미루어두고 예산을 토건업에 집중 투입하려는 것이다. 종래의 개발주의와 신속한 경기회복 효과를 노리는 과정에서 정부가 갈팡질팡하고 있다는 것이 국민들의 평균적인 생각이다.
물론, '부자를 위한 감세'와 '무모한 삽질경제'를 비판할 필요는 있다. 그러나 합리적인 국민들이 또한 갈구하는 것은 희망을 볼 수 있는 긍정의 비전이다. 어느 나라 어느 정권에서든 위기나 비상시의 대책은 공통적인 요소를 가지게 마련이다. 적자재정을 통해서 고용과 성장의 급속한 추락에 브레이크를 건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번 위기는 단기에 해결되지는 않을 것이므로 중ㆍ장기적인 시야의 전략도 필요하다.
간단히 요약해보면, 첫째로, 국가주의와 시장주의의 중간, 보호주의와 자유무역주의의 중간에 지역주의의 길을 많이 만들어야 한다. 미국 중국 일본은 물론, 동아시아 소국들과의 협력을 증진하고, 남북경제통합을 진전시킨다. 둘째, 균형발전과 불균형발전의 중간에서 고용과 성장을 위한 동력을 개발해야 한다.
지방 교육거점을 확충하고, IT, 수송기계 등 기존 우위 분야에서 녹색기술을 발전시키는 것이 현실적이다. 셋째, 시장과 기업조직의 중간에 존재하는 협력과 네트워크의 경제조직을 발전시켜야 한다. 이는 첨단산업, 중소기업, 농업에 함께 유용하며, 남북통합에도 기초가 될 수 있다.
다양한 '중간의 길' 모색해야
진보개혁세력이 다수가 되려면 반대와 저항의 벽돌로만 쌓여진 담론의 산성에서 나와야 한다. 궁벽한 산성에서 민생의 너른 들판으로 가는 통로는, 다양한 '중간의 길'이다. 이는 위기에 대한 대책이면서 안정과 성장을 위한 비전이기도 하다.
이일영 한신대 사회과학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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