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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턴은 없고 '알바'만 있다/ 복사 인턴·청소 인턴 자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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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턴은 없고 '알바'만 있다/ 복사 인턴·청소 인턴 자조…

입력
2009.02.23 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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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대통령은 지난달 6일 국무회의에서 "행정 인턴들에게 커피를 끓여오게 하거나 담배 심부름을 시키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일부 중앙부처를 제외한 대부분의 행정기관 인턴들은 실제 커피를 타고, 하루종일 복사에 시달리고 있다. 인턴 채용 할당을 받은 공기업 등 공공기관 역시 정부의 무리한 드라이브로 인해 채용과 활용에서 골머리를 앓고 있다. 특히 한정된 예산 때문에 기존 계약직의 실직 사태도 우려된다.

경력 축적? 잡일에 모멸감까지

중앙부처 국제협력 부서에 행정인턴으로 배치된 이모(25ㆍ여)씨. 당초 통ㆍ번역과 국제업무 자료수집 역할이었지만, 첫날부터 한 일은 명함과 영수증 정리, 풀칠과 복사, 팩스 보내기 등이었다. 이씨는 "한 달만 버텨보자, 곧 전공 일을 시키겠지 싶었지만, 지금은 커피도 타고, 청소도 하고, 화분에 물도 주는 '잡부'로 전락했다"고 말했다.

지난달부터 서울의 한 지검에서 행정인턴으로 일하는 김모(28)씨의 일과도 별반 차이가 없다. "민원서류 500장 가량 복사하고, 쓰레기통 비우고, 복사용지 수십 박스 옮기다 보면 '내가 이런 일 하려고, 4년제 대학 나오고 자격증 10개를 땄나' 하는 자괴감이 듭니다."

공무원들이 관심을 기울이지 않아 하는 일이 거의 없는 경우도 많다. 수도권 지방경찰청의 공보부서에 배치된 박모(24ㆍ여)씨는 "일이 많지 않아 취업 준비를 하면서 하루를 보낸다"며 "관리하는 것조차 귀찮아 얼른 취업해서 나가주기를 바라는 것 같다"고 말했다.

회원수 2,300여명의 다음 카페 '행정인턴실' 운영자 홍모(28)씨는 "은행 심부름 등 공무원의 사적인 일이나 화장실 청소를 시키고, 회식에서 성희롱까지 당했다는 사연이 올라온다"면서 "취업에 한 발 더 다가서고자 인턴을 지원한 젊은이들이 오히려 더 좌절감을 느끼고 있다"고 지적했다.

일선 지자체에 배치된 인턴들의 실상 역시 '전공을 고려해 배치하라'는 행정안전부 지침과는 거리가 멀다. 서울시 관계자는 "행정인턴이든, 청년공공근로든 행정 내부망에 접속할 수 없고 행정적 권한도 없으니 서류 정리 등 단순 업무만 시킬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정부는 이 같은 문제점이 지적되자 행정 인턴들의 만족도를 조사해 공표하겠다며 사실상 실명 조사를 벌이고 있어, 행정 인턴의 문제점을 덮으려 한다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공공기관들도 꺼리는 '인턴폭탄'

인턴 채용을 강제적으로 할당 받은 공공 기관들도 몸살을 앓고 있다.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 등 15개 국책연구기관이 몰려있는 대전 대덕연구개발특구에 배정된 인턴만 1,200여명에 달한다. 한 연구기관 관계자는 "기관마다 수십 명씩, 그것도 지방에서 과학기술 분야 인턴을 한꺼번에 채용할 수 있느냐도 걱정이지만, 설령 채용해도 효율적으로 훈련하고 활용할 수 있을지 답이 나오지 않는다"며 "거의 '인턴 폭탄' 수준"이라고 털어놓았다. 실제 한국전자통신연구원은 1차로 인턴 60명을 모집했지만, 8명만 채용했다.

인턴 인건비를 각 공공 기관들이 대부분 책임져야 해 예산 부담도 크다. 올해 인턴 160여명을 채용해야 하는 카이스트 관계자는 "기존 사업을 축소하거나 신규 사업을 일부 포기할 수밖에 없는 처지"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기존 계약직을 내보내는 사태도 우려된다.

교과부 소속 연구소의 한 관계자는 "연구기관마다 계약직 등 비정규직이 전체의 50%에 달하는데, 예산은 한정돼 있기 때문에 이들의 재계약은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공무원 노조 관계자도 "직원들 유고시 등에 채용하는 대체 근로자는 통상 3개월 단위로 계약하는데, 3월 초 즈음이면 대체 근로자들이 관둬야 하는 사태가 생길 것"이라고 말했다.

인턴세대의 비정규 세대화 우려

인턴을 활용한 청년 취업난 해소는 이미 2006년에 폐기된 대책이다. 외환위기 직후 정부는 인턴 채용 기업에 1인당 50만원씩 지원하는 사업을 실시했으나, 2004년 한국개발연구원(KDI)과 감사원이 "정부의 인턴지원제도가 오히려 기업이 자체 충원계획에 따른 정규인력 채용을 억제하는 등의 도덕적 해이를 발생시킨다"고 지적해 2005년을 끝으로 폐지됐다.

지금의 행정인턴에 해당하는 '청소년직장체험프로그램 공기업 등 공공기관 연수(재학생 포함)'도 2002년부터 실시됐으나, 정식채용으로 이어지지 않자 참여인원이 2004년 4만9,305명에서 2007년 1만6,000여명으로 급감했다. 외환위기 이후 정규직 감소와 비정규직 확대의 이면에는 정부가 인턴과 같은 임시방편 위주로 일자리를 늘려온 것도 자리잡고 있다.

이진우 국회예산정책처 예산분석관은 "당장의 실업자를 줄이기 위해 인턴과 청년공공근로 등을 이런 식으로 확대하다 보면, 경기 회복 때도 괜찮은 일자리가 늘지 않아 인턴 세대가 비정규직화 하는 더 심각한 문제를 초래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 현행 인턴 종류

◆행정인턴(행정안전부 주관)=만 29세 이하 대졸자 및 졸업예정자 중 올해 1만6,000여명을 선발한다. 중앙부처와 지방자치단체에서 최장 12개월 근무하며 주 40시간 기준 급여는 월 98만8,000원. 9급 공무원으로 채용되면 근무기간의 5할을 호봉에 가산해준다.

◆공기업 인턴(기획재정부 주관)=만 29세 이하 미취업자 대상, 302개의 공기업과 공공기관에서 올해 1만2,000여명 선발. 급여 등 근무조건은 각 기관과 정한다. 신입사원 채용은 보장되지 않지만, 평가 우수자에 한해 기관장 명의 입사추천서나 가산점 등을 준다.

◆중소기업 청년인턴(노동부 주관)=만 15세 이상 29세 이하의 학교 졸업자 및 졸업예정자 대상으로 2만5,000여명을 선발한다. 급여는 최저임금 이상으로 기업과 정하고, 노동부는 월 50만~80만원 선에서 임금의 50%를 지원한다. 근무기간은 6개월 이내로, 정규직 채용시 추가로 6개월간 임금 50% 지원.

◆청년공공근로(지방자치단체)=주로 주민센터에서 근무하며 승용차 요일제 업무, 각종 전산화 업무 등을 지원. 대졸자 대상 올해 3만여명 계획. 급여는 하루 3만3,000원이며, 3개월 단위로 계약한다.

강희경기자 kbstar@hk.co.kr

김혜경기자 thank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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