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저녁 역삼동의 한 뮤지컬 연습실에서 열린 오디션. 꽃샘추위로 쌀쌀한 바깥 공기가 무색하게 반팔 티셔츠에 반바지를 입은 배우 지망생들이 얼굴에 땀방울이 송글송글 맺힌 채 부지런히 심사위원의 지시를 따른다.
지정 안무와 발레, 탭댄스 시험을 거친 이들은 지정곡을 누워서, 또는 '록 스타일'과 '슬픈 버전'으로 바꿔 부르라는 지시에 일순 표정을 바꾸는가 하면 자신있는 동작을 요구하자 공중돌기까지 선보인다.
10~13세, 신장 150cm 이하의 소년으로 자격이 제한된 아역 오디션이라고 믿을 수 없을 만큼 지원자들의 넘치는 의욕이 돋보인다. 이곳은 발레리노를 꿈꾸는 11세 소년의 이야기를 그린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의 주인공 빌리를 뽑는 1차 공개 오디션 현장.
"발레요? 원래 남자가 하는 거죠! 오디션이요? 엄마가 가라고 한 거 아닌데요, 진심입니다!."
2010년 하반기 LG아트센터 공연이 예정된 라이선스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의 1차 공개 오디션은 16일부터 5일간 열렸다. 후보생을 뽑아 1년 간 연기, 노래 등 트레이닝 과정을 거친 뒤 최종 주인공을 선발하는 독특한 방식을 취하는 까닭에 공연이 1년 이상 남아 있지만 오디션 일정은 일찌감치 시작된 것. 하지만 벌써부터 고조되고 있는 작품에 대한 관심을 반영하듯 지원자가 300여명에 달했고 경력도 성인 배우 못지않게 화려했다.
임선우(10)군은 국내외 크고 작은 발레 경연에서 네 차례나 수상했고 김준기(11)군은 '나인' '명성황후', 이상민(11) 이지명(12)군은 '라이온 킹' 등 대형 뮤지컬 무대에 서기도 했다.
탭댄스 장기로 TV 쇼 프로그램 '스타킹'에 출연한 경험이 있는 지원자, 쿵후 챔피언 등 다양한 특기를 지닌 이들은 무엇보다 열정이 넘쳤다.
유니버설 발레아카데미에 다니는 박준형(10)군은 "영화 '빌리 엘리어트'를 보고 감동해 발레를 배우기 시작했다"며 "뮤지컬 한국 공연 소식을 듣자마자 오디션을 신청했다"고 말했다.
1차 오디션 최종일까지 탈락하지 않고 살아남은 참가자 중 최연소인 이혁(9)군은 "사람들에게 나를 표현할 춤이 있고 내 감정을 표현하고 싶어 오디션에 나왔다"면서 "전에 공연에 참여한 적은 없지만 빌리 역을 꼭 맡고 싶다"고 야무지게 지원 동기를 밝히기도 했다.
특히 지원자들의 이 같은 의지는 '잠재력 있는 아이를 찾는다'는 이번 오디션의 중요한 선발 기준과도 맞닿아 있다. 심사를 위해 내한한 총괄 프로듀서 루이스 위더스, 연출가 저스틴 마틴, 안무가 톰 호그슨, 음악감독 스티븐 에이모스 등 '빌리 엘리어트' 호주 프러덕션 스태프들이 한국 공연에 기대감을 표시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프로듀서 위더스는 "체격 조건뿐 아니라 감성과 성격까지 빌리에 적합한 아이들을 찾는 게 이 뮤지컬 제작의 첫 단계로, 이번에 가능성 있는 아이들을 많이 발견했다"고 말했다. 또 연출가 마틴은 "5일 간 아이들을 지켜보면서 아직 다듬어지지는 않았어도 감성과 잠재력이 풍부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고 말했고, 음악감독 에이모스는 "노래 실력은 한국 어린이들이 호주나 영국 아이들보다 훨씬 뛰어나다"며 놀라워했다.
제작진은 이번 오디션에서 10~12명을 선발하고, 3월부터는 지방 순회 오디션을 진행한다. 1차 오디션에서 뽑힌 아이들은 7월 2차 오디션을 거친 뒤 1년간 '빌리'가 되기 위한 체계적인 교육을 받게 된다.
김소연 기자 jollylif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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