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에 독립영화 열풍을 불러일으킨 다큐멘터리 '워낭소리'가 20일 100만 관객을 돌파했다. '워낭소리' 배급사 인디스토리는 20일 "19일까지 97만명이 관람했으며 20일 100만 관객을 넘어선 것으로 잠정 집계됐다"고 밝혔다.
100만 관객은 국내 영화흥행 역사상 독립영화가 한번도 밟지 못한 꿈의 고지이다. 영화계에서는 "상업영화 1,000만 관객에 버금가는 독립영화의 신기원"이라는 평가와 함께 "200만 관객도 가능하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그간 독립영화의 국내 최고 흥행기록은 2007년 '원스'의 22만명이었다.
중장년층 "향수에 젖어", 젊은층 "느림의 가치"
'워낭소리' 돌풍을 이끌고 있는 것은 멀티플렉스의 젊은층 위주 영화 상영 때문에 그동안 영화 관람과 거리를 둬온 우리 사회의 중ㆍ장년층이다. 대부분 농경문화를 경험한 이들은 70대 할아버지 할머니와 마흔 살 소가 함께 빚어내는 전원의 일상에서 우리사회가 잃어가고 있는 옛 풍경을 발견한다.
20일 오후 '워낭소리'를 보기 위해 서울 명동의 한 극장을 찾은 A(67)씨는 "자식처럼 귀한 소가 김이 모락모락 나는 소죽을 먹던 어린 시절의 기억이 생생하다"며 "소에 대한 영화라 하길래 꼭 봐야겠다는 생각에 경기 성남시에서 여기까지 왔다"고 말했다. B(67)씨는 "6ㆍ25때 광주로 피난 갔다가 남의 집 추녀 밑에서 잠깐 잠들었는데, 깼을 때 소가 따스한 눈빛으로 나를 지긋이 내려다보던 기억이 생생하다"며 "'워낭소리' 이야기를 들은 뒤 자꾸 그 때 생각이 나 극장을 찾았다"고 말했다.
30년 만에 극장에 왔다는 윤대현(67)씨는 영화를 본 후 "할아버지가 소와 평생을 함께 하면서 같이 늙어가는 모습이 가슴을 쳤다"며 "옛날 생각도 많이 나고 소가 인간처럼 느껴져 많이 울었다"고 말했다. 김홍채(69)씨는 "우리 부모님의 삶과 예전 농촌 생활을 화면으로 보면서 옛 기억을 되살릴 수 있었다"고 말했다.
농경문화와 거리가 먼 젊은층의 반응도 뜨겁다. 이들은 할아버지와 소의 30년 우정에서 '희생'과 '느림'의 진정한 가치를 읽는다고 입을 모은다.
박민지(33)씨는 "신경숙씨의 소설에서 '모든 것을 희생하는 엄마의 눈이 소 눈을 닮았다'는 구절이 나오는데, 영화에서 클로즈업된 소 눈을 보면서 엄마의 마음이 가슴에 와 닿았다"고 말했다. 최여진(25)씨는 "영화 내용이 천천히 전개돼 마치 소의 걸음을 연상시킨다"며 "요즘 영화들은 전개가 빨라 정신이 없고 자극적인데 마음 편하게 감상할 수 있어 좋았다"고 평했다.
영화계 "한국 영화계 변화의 계기 돼야"
영화인들은 '워낭소리'의 성과에 긍정적인 의미를 부여하면서 독립영화 진흥을 위한 정부의 제도적 지원 강화를 촉구하고 있다. 영화계는 무엇보다 '워낭소리'가 독립영화의 존재감을 대중들에게 각인시킨 점을 높이 사고 있다. 영화사 진진의 김난숙 대표는 "독립영화에 대한 인식을 바꾸어 놓았고, 시장에서의 성공 가능성도 확인시켜 줬다"고 평가했다.
타성에 빠진 주류 영화계에는 각성의 기회가 되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심재명 MK픽처스 대표는 "흥행에 대한 고정관념이나 공식에 함몰돼서는 안 되겠다는 반성을 많이 했다"며 "다양한 한국영화가 다양하게 사랑받을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극장 관객층 확대에 기여한 점도 '워낭소리'의 성과로 꼽힌다. 이상규 CGV 홍보팀장은 "'워낭소리'는 젊은 시절 극장 앞에 줄을 서서 기다리던 추억을 가진 한국 중ㆍ장년층의 영화에 대한 숨은 열정을 이끌어냈다"며 "20대 위주로 맞춰져 있는 최근의 국내 영화제작 행태에 변화의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나 '돈만 벌면 좋은 영화', '영화만 좋으면 만사형통'이라는 단순 논리의 확산에 대한 경계도 있다. 김영진 명지대 영화뮤지컬학부 교수는 "'워낭소리'가 기적 같은 성과를 이뤘지만 극장의 영화 유통 시스템은 여전히 엉망"이라며 "독립영화 상영 공간이 더 많이 생겨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재의 후진적 상영 시스템의 개혁 없이는 제2의 '워낭소리'의 등장은 불가능하다는 지적이다.
라제기 기자
정영명 인턴기자(이화여대 언론정보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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