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최근 들어 경제 발전이나 위기 극복을 위해 규제완화가 꼭 필요하다는 얘기를 자주 들어보셨을 겁니다. 특히, 이명박 정부 들어서는 ‘꼭 필요한 규제 외에는 과감하게 풀어야 한다’는 논리가 주를 이루는데요. 한편에서는 너무 지나친 완화가 오히려 경제질서를 해치고 부작용만 키운다는 반대의 목소리도 만만치 않습니다. 규제완화가 뭐고 왜 필요하길래 서로들 입장이 다른 걸까요. 닥터 이코노미에게 물어봅시다.
규제는 왜 필요할까요.
규제란 공공의 이익을 위하여 규정을 마련하고 이에 근거해 개인 및 기업의 행위를 제한하고 감독하는 것을 말합니다. 규제가 필요한 가장 큰 이유는 자유시장경제에서 발생할 수 있는 ‘시장실패’를 보완하기 위해서 입니다.
시장실패라는 말이 생소하시죠? 시장경제 아래서는 개인이나 기업이 자율적으로 경제활동에 참여하고, 이른바 ‘보이지 않는 손’인 가격을 통해 합리적인 소비와 생산이 이루어집니다. 그런데 이런 시장경제 시스템도 완벽한 것은 아니어서 가격조정 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많이 발생하게 되는데 이를 시장실패라고 합니다.
예를 한 번 들어볼까요? 어느 대규모 공업단지에서 여러 공장들이 제품을 생산하고 있다고 칩시다. 이들이 생산활동을 하는 과정에는 필연적으로 매연, 화학약품 등의 오염물질이 배출됩니다. 만일 정부가 아무런 규제를 가하지 않는다면 공장들은 비용을 최대한 아끼기 위해 너도나도 오염물질을 몰래 밖으로 버리거나 가급적 정화시설을 설치하는 데 드는 비용을 아끼려 할 것입니다. 이렇게 공장들의 오염물질 배출로 인해 지역 주민들이 피해를 입는 문제는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자동적으로 해결되기 어렵습니다. 정부의 규제가 필요한 때가 온 것입니다. 따라서 정부는 환경보호법을 제정하여 공장들의 오염물질 배출을 제한하고 공장들로 하여금 정화시설을 적절히 갖추게 함으로써 시장실패를 해소하고 공공의 이익을 달성하게 됩니다.
한 가지 예를 더 들어 보겠습니다. 수많은 기업들이 경쟁하는 시장에서 어느 한 기업이 부당한 방법으로 시장지배력을 높이거나 소수의 기업들이 서로 담합을 하게 될 경우 독과점 현상이 나타납니다. 독과점 시장에서는 몇몇 기업들이 상품가격을 마음대로 결정할 수 있게 돼 질 낮은 제품을 비싸게 팔아도 소비자들은 피해를 피하기 어렵습니다. 이 역시 시장실패로 인해 사회적 손실이 발생하게 되는 것이지요. 따라서 정부는 공정거래법을 제정해 기업들 간의 담합행위를 방지하고 독점기업에 규제를 가함으로써 공정한 경쟁을 유도하게 됩니다. 이렇듯 시장실패가 발생할 경우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규제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규제만 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나요.
물론 아닙니다. 시장경제 시스템이 불완전한 것처럼 규제도 여러 가지 문제를 낳습니다.
먼저 ‘의도가 좋다고 반드시 결과도 좋은 것은 아니다’라는 말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최저임금제를 예로 들어 보겠습니다. 최저임금제란 저임금 근로자들이 인간다운 생활을 누리는 데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생계비를 보장함으로써 사회적 빈곤을 없애고 소득재분배를 실현하기 위한 규제입니다. 하지만 사용자 입장에서 최저임금이 높게 느껴질 경우, 사용자는 오히려 채용규모를 줄이려 할 것이고 이는 결국 저임금 근로자들의 일자리 감소로 이어지게 됩니다. 근로자들의 복지 증진을 위해 만든 최저임금제가 본래의 의도와는 사뭇 다른 결과를 낳게 됩니다.
또한 규제는 그 특성상 경직적이고 획일적으로 운용될 가능성이 높은데 이로 인해 효율성이 저하될 수 있습니다. 가령, A 기업은 전통적인 생산방식으로 물건을 생산하는 데 반해, B 기업은 자신이 개발한 효율적인 생산방식을 이용해 보다 더 저렴한 비용으로 품질 좋은 물건을 만든다고 가정해 봅시다. 그런데 만일 정부가 제품의 안전성 등을 이유로 전통적인 생산방식을 강요하는 규제를 만든다면 B기업이 개발한 효율적인 생산방식은 빛을 보지 못한 채 묻혀버릴 것입니다. 이렇듯 경제 주체들의 다양한 개성을 무시한 채 획일화된 규제만을 고집하게 된다면 기업들은 기술개발에 지장을 받을 것이고 경제적 효율성이 낮아지는 결과가 발생합니다.
따라서 규제는 합리적인 수준에서 만들어지고 적용되어야 합니다. 규제가 너무 많을 경우 발생할 수 있는 기업의 비용과다 문제와 너무 적을 경우 발생하는 사회적 이익저해 문제를 적절히 조절하여 합리적인 수준으로 규제를 개선하고 보완하는 것을 ‘규제개혁’이라 합니다.
규제개혁을 하면 어떤 점이 좋을까요.
규제는 몸이 아플 때 먹는 약과 같습니다. 평소 몸이 제 기능을 발휘한다면 약이 필요 없지만 몸이 아플 때는 건강회복을 위해 적절한 약을 먹어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경제에서 시장실패가 일어나는 등 문제가 생겼을 경우에도 합리적인 규제를 새로 만들거나 불합리한 규제를 폐지ㆍ완화하는 것 같은 규제개혁을 통해 시장을 본래의 건강한 모습으로 돌아오게 할 수 있습니다.
즉 규제개혁으로 인해 기업들 간에 공정한 경쟁이 활성화되고 혁신노력이 강화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기업의 노력은 노동, 자본 등 생산요소들의 생산성을 높이고 그 결과 경제의 성장잠재력이 확충되어 장기적 성장의 기반을 제공하게 됩니다.
또한 규제개혁은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 외국인 투자유치에도 큰 도움이 됩니다. 기존 연구에 따르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불필요한 규제가 많은 나라일수록 외국인직접투자가 부진하며, 만일 OECD 국가 모두가 규제의 강도를 영국 수준으로 낮추는 규제개혁을 한다면 OECD 전체의 외국인직접투자는 10% 가량 증가할 것이라고 합니다.
이와 같이 합리적인 규제개혁은 공공의 이익을 달성하고 시장경제를 원활하게 작동시켜 안정적이고 지속적인 경제발전을 가능케 하는 필요조건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규제는 어떤 수준인가요.
규제개혁위원회에 따르면 2009년 1월중 우리나라에 등록된 규제(풀어읽는 키워드 참조)는 총 5,189건으로 이 중 경제적 규제가 45%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사회적 규제와 행정적 규제가 각각 36%, 19%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외환위기 수습을 위한 경제구조개혁 과정에서 규제가 크게 완화된 바 있으나 그 이후 완화 속도가 느려지면서 주요 선진국에 비해 아직도 규제가 강한 수준입니다. 대표적 규제지표인 OECD 상품시장규제(PMR) 지수에 의하면 우리나라 규제 수준은 2003년말 현재 30개국 중 18위로서 OECD 국가들의 평균보다 높습니다. 또 세계은행(World Bank)이 발표하는 각국의 기업경영환경(Doing Business 2009)에서도 우리나라는 고용ㆍ해고ㆍ창업 등에서의 규제강도가 OECD 주요국 뿐 아니라 다수의 개도국보다 높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는 우리나라가 규제개혁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왔지만 여전히 비합리적이고 불필요한 규제들이 경제성장에 걸림돌이 되고 있으며, 따라서 규제개혁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점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한국은행 조사국 윤용준 조사역
▦ 풀어읽는 키워드 - 규제의 종류
규제는 성격에 따라 경제적 규제, 사회적 규제, 행정적 규제로 나눌 수 있습니다. 먼저 경제적 규제는 기업의 활동에 대한 규제로서 진입규제, 가격규제, 거래규제 및 품질규제로 세분됩니다. 사회적 규제는 보건, 안전, 환경과 같은 공익보호를 목적으로 정부가 기업활동에 개입하는 것을 말하고 행정적 규제는 정부업무수행과 관련된 서류작업이나 행정적 요식행위 등을 의미합니다.
■ 우리나라 규제개혁은 얼마나 필요할까
우리나라는 규제개혁이 얼마나 필요한 나라일까요
본문에서도 설명했듯이 적절한 수준의 규제는 경제에 매우 중요하다고 하니 규제완화가 반드시 좋은 것만은 아니겠죠. 요즘 우리 사회에서 한창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는 부동산 규제완화나 각종 세금 규제완화 등은 그래서 적절한 규제 수준이 어디냐를 놓고 의견이 갈리는 상황입니다.
수도권에 공장을 새로 짓게 한다거나 서울 강남권 3구를 투기지역에서 해제하는 등의 규제완화는 침체된 경기를 되살리는 효과가 크다는 의견도 많지만 오히려 수도권 과밀화나 투기조장 같은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습니다.
감세나 종합부동산세 감면 등도 소비를 늘려 경기회복에 도움이 된다는 주장과 부자들만 좋게 만든다는 비판이 팽팽히 맞서고 있고요. 이달부터 시행된 자본시장통합법 역시 크게 보면 금융시장의 규제를 대폭 완화한 법률입니다만, 한편에서는 요즘 세계적인 금융규제 강화 움직임에 역행한다는 우려도 적지 않았습니다.
이 같은 논란과는 별개로, 외국에서 보기에 우리나라는 규제가 대체로 심한 나라인 것 같습니다. 세계은행(World Bank)이 지난해 전세계 181개국을 대상으로 기업들의 경영환경을 분석해 순위를 매긴 '기업환경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전반적인 기업환경 순위는 23위로 최상위권 국가들과는 여전히 차이가 아직 큽니다.
특히, 창업 관련 환경이 나쁜 평가를 받았는데요. 예를 들어, 창업까지 걸리는 절차는 OECD 평균이 5.8단계인데 비해 국내는 10단계나 돼 124위, 창업에 걸리는 기간은 17일로 58위에 머물렀습니다. 그만큼 쓸데없는 규제가 많다는 뜻이겠지요.
그래서인지 다른 조건변화 없이 규제완화만 잘 해도 경제성장률을 끌어올릴 수 있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한국은행은 지난해 보고서에서 우리나라 산업에서 평균적으로 규제를 10%씩 완화하면 생산효율을 뜻하는 총요소생산성이 0.3%포인트 증가한다고 분석했습니다. 한은은 특히 금융, 의료, 건축 등 서비스업에서의 규제 완화가 생산성 향상에 효과가 크다고 봤습니다.
김용식 기자 jawoh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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