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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인생] 꿈꾸는 '저곳'은 '이곳'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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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인생] 꿈꾸는 '저곳'은 '이곳'에 있었다

입력
2009.02.23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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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지를 닦아본 사람이라면, 아무리 닦아도 먼지를 완전히 없앨 수는 없다는 것을 알 것이다. 존재하는 모든 것들의 주위를 부유하며, 닦고 돌아서는 순간 또 내려앉는 것. 그것이 먼지다. 그런데 만약, 이 대기를 뒤덮고 있는 게 먼지가 아니라 모래라면 어떨까?

아베 코보의 <모래의 여자> (김난주 역, 민음사, 2001)는 사막 곤충을 채집하러 집을 나섰다가 모래 마을에 갇히는 한 남자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하루라도 모래를 파내지 않으면 마을 전체가 모래 속에 파묻혀 버리는 곳. 하여 모래 마을 사람들의 하루는 모래를 퍼내는 것으로 시작해 모래를 나르는 것으로 끝나고, 그 끊임없는 노동이 보장하는 삶이란 것도 모래옷을 입고 모래밥을 씹으며 모래 이불을 덮고 자는 데서 크게 나아가지 않는다.

이것이 인간의 삶인가, 남자는 절규한다. 그러나 그곳에서는 법도, 합리적인 대화도 통하지 않는다. 모래 언덕에 파묻혀 죽은 이를 대신해 이제 그가 모래를 퍼내야 할 뿐이다. 탈출은 번번이 실패하고, 생명을 유지하려면 그 자신을 위해서도 모래를 퍼내지 않을 수 없는 상황. 답답한 것은 남자뿐, 일생을 그렇게 살았을 마을 사람들은 느긋하기만 하다.

그런데 이토록 비현실적인 세계가 낯설지 않은 이유는 뭘까. 화려하고 복잡한 세상, 그 속에서 뭔가 대단한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은 나만의 착각이 아니었을까. 어쩌면 우리 삶도 결국 저 모래 퍼내기와 다를 바 없으리라는 우울한 자각.

하지만 소설의 백미는 마지막 장면이다. 마침내 모래 구멍으로 사다리가 내려오지만 남자는 더 이상 도망치지 않는다. 길들여졌기 때문이 아니다. 모래 속에서 물을 얻을 수 있는 장치를 고안해냄으로써 그는 구멍 속에서 이미 구멍 밖을 살고 있었기 때문이다. 먼지도 모래도 끈질기지만 삶은 더 힘이 세다.

안과 밖이 하나이니, 중요한 것은 결국 '어디'가 아니라 '어떻게'가 아닐까. 우리는 언제나 '저 곳'을 꿈꾸지만 '저 곳'은 항상 우리 안에 있다. 벌이 무서운가. 아베 코보는 말한다. "벌이 없으면, 도망치는 재미도 없다."

이선우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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