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석 추기경은 20일 오전 교황 베네딕토 16세의 이름으로 집전한 고 김수환 추기경 장례 미사에서 강론했다. 다음은 강론 요지.
김 추기경님께서는 항상 우리 사회의 큰 어른으로서 빛과 희망이 되어주셨습니다. 김 추기경께서는 가톨릭 신자뿐 아니라 모든 한국인의 ‘사랑과 평화의 사도’ 였습니다. 우리나라가 힘들고 어려웠던 때마다 김 추기경님의 존재는 우리들에게 큰 위안이 되었습니다.
김 추기경님께서는 노환으로 고통을 받으시면서도 마지막 순간까지 미소와 인간미를 잃지 않으셨습니다. 당신의 안구를 기증하고 떠남으로써 착한 목자의 삶을 다하셨습니다.
김 추기경님은 한 사제이기 전에 따뜻하고 상냥한 마음을 지닌 분이셨습니다. 추기경님께서는 “세상에서 사랑을 너무 많이 받아 고맙습니다. 서로 사랑하십시오”라는 마지막 말씀을 남겨주셨습니다. 이 자리에 있는 우리는 김 추기경님의 뜻을 마음에 새기고 본받아 감사하고 사랑하고 용서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나라가 많은 어려움에 직면했던 1970년대 김 추기경님이 짊어진 십자가가 무거웠고 풀어가야 할 숙제가 참으로 많았습니다. 그때마다 김 추기경님은 피할 수 없는 모든 고난을 기도와 대화로 풀어갔습니다.
김 추기경님의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사랑은 남달랐습니다. 김 추기경님의 사목 활동에서 우선수위를 둔 것은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이었습니다. ‘교회는 가난한 이들의 눈물을 닦아주어야 한다’는 믿음에서였습니다. 그래서 김 추기경은 도시 빈민들의 허름한 막사나, 노동자들의 시위현장을 가리지 않고 찾았습니다.
독재정권 시절 민주화운동의 편에 선 것은 그분이 가진 가치관과 믿음의 실천에서 우러나온 것이었습니다. 1971년 성탄미사에서는 생방송으로 진행되는 중에 정부에 대한 쓴소리를 하는 용감한 신앙인의 모습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래서 70~80년대 김 추기경님은 민주화운동의 버팀목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격동의 세월을 보내시느라 사제로서 또 한 인간으로서 겪은 심적 고통은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컸을 것입니다. 평생 고생하셨던 불면증도 그때 생겼다고 합니다.
또한 김 추기경님은 어떤 상황에서도 유머를 잃지 않는 소탈한 모습을 지니신 것으로 유명합니다. 항상 어린이처럼 해맑은 김 추기경님의 미소는 보는 이들의 마음도 훈훈하게 해주었습니다.
추기경님의 회고는 끝이 없을 것입니다. 김 추기경님은 우리 가운데 성자처럼 사셨던 촛불과 같은 존재였습니다. 사랑과 나눔을 우리들에게 그 어떤 것보다도 중요한 유산으로 남겨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슬픈 상황 속에서도 한 가닥 희망을 가질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위대한 목자 김 추기경님과 한 시대를 함께 살았다는 것에 하느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려야 하겠습니다.
다시 한 번 김 추기경님의 명복을 빌면서 추기경님이 믿고 바라시던 대로 하느님 나라에서 영원한 안식과 평화를 누리시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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