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김수환 추기경을 추도하는 행렬이 끝이 없다. 어제, 그의 모습이 공개된 마지막 날 서울 명동성당에는 새벽부터 조문객들이 몰려들어 적게는 두세 시간, 많게는 다섯 시간 넘게 기다림이 이어졌다. 김 추기경의 모습을 더 이상 볼 수 없다는 슬픔, 그가 남긴 뜻을 가슴에 새기려는 다짐으로 추위 속의 기다림은 경건한 기도의 모습이었다. 지금 이 시대, 우리 사회, 우리 국민이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말없는 '시위'였다.
16일 오후 그의 선종(善終) 소식이 알려졌을 때만 해도 이런 정도의 국민적 추도 열기를 예상하지 못했던 게 사실이다. 이후 추기경이 걸었던 삶의 모습이 전해지고, 몰랐던 행적이 새로 알려지면서 '큰 어른'의 모습은 더욱더 가깝게 다가오게 됐다. 가톨릭계의 지도자라는 의미를 넘어, 힘없는 이들의 이웃, 도움이 절실한 사람의 아버지, 외로운 장애인의 친구로 언제나 우리와 함께 있었음을 확인했다. 그래서 그의 장례는 모두의 마음 속에 '국민장'으로 자리잡고 있다.
이념과 계층 세대를 넘어 끝없이 이어진 추도 행렬과 그 속에 흐르는 뜨거운 간구 속에서 우리 국민이 얼마나 사랑과 겸손에 목말라 하고 있었는지 알 수 있다. 그 동안 사랑과 겸손의 모습으로 얼마나 많은 행사가 있었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나섰던가. 그러나 말이나 구호만으로 국민들은 감동할 수 없었다. 김 추기경이 남긴 한 마디의 글, 소박한 유품 속에서 끝없는 섬김과 진정한 낮춤의 실재를 확인했고, 그것이 '기적의 행렬'을 만들었다.
민주화 운동의 중심이었던 명동성당 앞에는 '고맙습니다 서로 사랑하세요'라는 플래카드가 걸려 있다. 그 아래로 수십만 명의 기도가 흐르고 쌓였다. 1970년대 80년대에도 이보다 더 감동적인 일은 없었다. 그것은 김 추기경의 유언이며, 겸손하지 못하고 사랑하지 않는 사람들을 향한 온 국민의 발언이며 바람이다. 김수환 추기경은 나의 마음에서, 가정에서, 사회에서, 국가 차원에서, 한 동안 잊고 있었던 사랑과 겸손의 크나큰 힘을 뚜렷이 일깨우고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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