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중을 매혹시키는 생상스의 '죽음의 무도' 도, 탄성을 자아내는 화려한 점프도, 빙판 위로 쏟아져 내리는 테디베어도 없다. 하지만 열정만은 그랑프리 시리즈에 참가한 선수들에 뒤지지 않는다.
18일 오후 서울 양천구 목동아이스링크. 얼음을 지치는 어린 학생들 사이에서 눈처럼 새하얀 피겨스케이트를 신은 채 빙판을 우아하게 가로지르거나, 근사한 솜씨로 스핀을 선보이는 이들이 눈길을 끈다.
일주일에 세 번 열리는 '어머니반 피겨교실' 강습에 참석한 여성들이다. '어머니반'이지만 주부, 대학생, 대학원생 등 10여명의 학생들이 강사 진윤기(32)씨의 손짓에 맞춰 다양한 동작을 몸에 익히느라 열심이다.
마은숙(41ㆍ서울 강서구 가양동)씨는 "엄마도 나랑 함께 배우자"는 딸 선민아(11)양의 성화에 못이겨 이달초 피겨화를 신었다.
1년 정도 피겨스케이트를 배운 딸은 레이 백스핀(허리를 뒤로 젖혀서 돌기), 싯스핀(움츠린 자세로 돌기), 카멜스핀(한 다리를 든 채 돌기) 등을 구사할 수 있는 단계. 하지만 마씨는 아직 엉거주춤 기본자세인 크로스오버(발을 풀었다가 꼬았다가 하는 동작)를 연습하는 데도 비지땀이 솟는다.
마씨는 "음악에 맞춰 영감을 표현해 내는 피겨스케이트는 보는 것만으로 예술적 감흥이 생기는데, 직접 빙판 위에 서면 마치 공연 무대에 서는 것 같다"며 "운동으로도 만족스러울 뿐 아니라 딸과 한 공간에서 즐겁게 시간을 보낼 수 있어 일상 생활에서도 힘이 솟는다"고 엄지손가락을 추켜 올렸다.
"김연아 선수처럼 하려는 것은 절대 아니에요. 보기 예뻐서 나도 해볼까 시작했어요"라는 최향자(36ㆍ서울 은평구 신사동)씨. 최씨는 "다른 운동보다 덜 지루한 것이 피겨의 매력"이라고 활짝 웃었다.
언뜻 보면 다 비슷해보이지만 스텝, 스핀, 점프 같은 동작 하나하나가 숙련도에 따라 세분화돼 있어 한 가지 기술을 마스터하면 또 다른 기술이 기다리고 있다. "유연성이 허락하는 한 계속 타고 싶어요. 점프는 무리겠지만 스핀까지는 배워야 하지 않겠어요?"
지난해 겨울방학 처음 피겨스케이트를 타기 시작했지만 강의 때문에 두 달 만에 그만둔 아쉬움을 달래려 올초 다시 스케이트를 꺼냈다는 대학생 김성원(21ㆍ서울 양천구 목동)씨도 남다른 성취감을 피겨스케이팅의 매력이라고 강조했다.
김씨는 "처음 배울 때는 너무 어렵지만, 반복해서 연습할수록 예쁜 동작이 되는 것이 신기하다"며 "1급 자격증에 도전해 볼 생각"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대학 시절부터 요가, 헬스, 파워워킹 등을 즐기고 있는 대학원생 서윤아(25ㆍ경기 안산시 성포동)씨는 "빙판에 서면 살아 있는 느낌이 든다"고 했다. 초등학교 때 스케이트를 타던 기억을 되살려 지난해 7월부터 시작했다.
체형을 잡아주고 바른 자세를 유지하도록 하는 데 이만한 운동이 없다는 것이 서씨의 말. "리듬체조나 싱크로나이즈드 스위밍처럼 음악이 있다는 점에서 피겨스케이트는 예술이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잘 먹게 돼서 그런지 다이어트에는 별로 도움이 안되더라구요. 호호호."
쇼트트랙 붐을 잠재운 '김연아 신드롬' 덕택에 최근 1,2년 동안 피겨스케이트 인구가 빠르게 늘고 있지만 80~90%가 초등학생들. 하지만 보는 것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는 주부, 학생, 직장인들도 점차 피겨스케이팅에 도전하고 있다.
경력 20년째인 롯데월드 아이스링크 강사 여승희(41)씨는 "학창 시절에 피겨스케이트를 탔던 기억을 되살려 다시 피겨를 타려는 여성들이 눈에 띄게 늘었다"고 전했다.
어린 딸과 함께 스케이트를 배우려는 30대 여성들이 주류지만, 김연아보다는 카트리나 비트(1984, 88년 올림픽우승자)나 크리스티 야마구치(1992년 올림픽 우승자)가 더 친숙한 40대, 50대 여성들도 꽤 있다는 것이 여씨의 전언이다.
여씨는 "컴퓨터 앞에 오래 앉아 있어야 하는 직장인이나 모유 수유 등으로 허리가 구부러진 출산 여성들이 1년 정도만 피겨 스케이트를 배우면 균형있는 몸매를 만들 수 있다"며 "어린 시절의 추억에도 잠겨볼 수 있고, 유연성을 키울 수 있다는 점에서 피겨스케이트는 성인들에게 권장할 만한 꿈의 스포츠"라고 말했다.
■ 아이스링크 강습 주 2, 3회 받으면 월 7만~8만원선
피겨스케이트 초급자들이 갖춰야 할 장비는 스케이트와 피겨복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스케이트. 국산 제품의 품질도 훌륭한데 가격은 12만~18만원 정도다.
자신의 구두 사이즈보다 5㎜ 정도 큰 것으로 살 것을 권장한다. 초급 단계를 넘어 좀더 숙련된 기술을 시도해보고 싶다면 스케이트를 고급용으로 바꾸어야 한다.
고급용 스케이트 구두는 수입 제품이 50만~70만원선. 이 단계에서는 점프 등을 시도해야 하기 때문에 날도 교환해야 한다. 어떤 점프 스타일?시도하느냐에 따라 사용하는 날이 다르다. 가격은 35만~70만원 정도이며, 별도로 주문해야 한다.
피겨복은 타이즈(3만원선)와 함께 착용해야 한다. 원피스 스타일은 8만원선, 스커트만 구입하면 5만원 정도다. 피겨복을 착용하지 않더라도 피겨스케이트 강습을 받을 때는 가능한 한 몸에 달라붙는 옷을 입어야 한다.
그래야 강사가 무릎의 구부러짐과 발목의 위치 등을 섬세하게 관찰할 수 있다. 제품은 주요 스케이트링크 안에 있는 스케이트 전문점에서 구입하는 것이 좋다.
피겨스케이트를 배울 수 있는 곳은 목동아이스링크(2649-8454), 롯데월드아이스링크(411-2105), 고려대 아이스링크(3290-4243), 광운대 아이스링크(909-3114), 고려대 아이스링크 (3290-4243), 안양실내빙상장(031-389-5263), 분당 올림픽 스포츠센터(031-709-7485) 등 주요 실내링크들이다.
강습은 10명 안팎이 함께 배우는 단체강습과 5명 이내로 진행하는 개인강습이 있다. 단체강습은 목동아이링크의 경우 주 2회 월 7만3,000원, 주3회 월 8만8,000만원이다.
개인강습은 강사에 따라 차이가 나는데, 롯데월드아이스링크의 경우 17만6,000(4회)~47만3,000원(20회)이다. 선수가 되려는 게 아니라면 개인강습이라 해도 1대1보다는 두세 명 정도가 함께 배워야 지루함을 덜고 강습과 연습시간을 배분할 수 있어 효과적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동기 부여를 하고 싶다면 대한빙상경기연맹, 서울빙상경기연맹이 주관하는 등급시험을 치르는 것도 권할 만하다. 시험은 초보자가 6개월~1년 정도 연습하면 도전할 수 있는 초급부터 국가 대표 선수 수준인 8급까지 세분화돼있다.
이왕구기자 fab4@hk.co.kr
정영명 인턴기자(이화여대 언론정보3)
■ 은반위의 요정 꿈… 7세 이전·50세 이후 싫증·부상위험
두께 3㎜ 가량의 날 위에 몸을 싣고 은반을 우아하게 질주하는 모습을 보다 보면 선망과 의심과 기대가 교차할 것이다. '분명 피겨스케이트는 선택받은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스포츠 이상의 그 무엇일 것이다.' '과연 내 몸도 은반 위를 날았다가 자연스레 착지할 수 있을까.' '우리 아이 몸에도 피겨스케이트 선수의 피가 흐르는 건 아닐까.'
피겨스케이트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피겨스케이트를 배우려는 사람도 늘고 있다. 다음은 피겨스케이트를 배우기 전 당신이 알면 좋은 몇 가지 것들.
● 일곱 살이 가장 적정 연령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가 골프채를 잡은 나이는 고작 두 살. 영국 축구선수 웨인 루니는 열 살에 프로팀과 첫 계약을 맺었다. 어려서부터 뛰어난 재능과 발군의 실력을 발휘해온 세계적 스포츠 스타의 사례는 허다하다.
유연성이 강조되는 피겨스케이트는 더더욱 어릴 때 시작하면 좋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마련. 하지만 일찌감치 피겨스케이트 부츠를 신으면 대성하리라는 생각은 부모들의 섣부른 욕심일 뿐이다.
피겨스케이트는 나이가 어릴수록 잘 할 수 있는 종목은 절대 아니다. 피겨스케이트를 시작하기에 가장 적당한 나이는 일곱 살. 김연아도 일곱 살부터 은반을 지쳤다. 여덟 살도 늦은 편에 속하진 않는다. 언제 시작하느냐보다 중요한 것은 역시나 소질. 아이의 재능 여부를 파악하는 것이 우선이다.
모든 운동이 그렇지만 너무 먼 미래를 바라보며 피겨스케이트를 시작하면 부작용과 실망만 크다. 우선 기초 자세를 배울 수 있는 강습 프로그램을 이용해 보는 게 좋다. 아이에게 흥미 유발을 하고 아이의 재능을 발견한 뒤 본격적인 전문 지도에 들어가도 늦지 않기 때문이다.
● 나이 쉰이 넘으면 곤란
마음은 김연아라지만 모두가 김연아가 될 수는 없는 법. 얇은 스케이트 날 위에 몸을 싣다 보니 피겨 스케이트엔 신체적 제약이 다소 따른다.
피겨 스케이트를 하기엔 기계체조 선수와 같은 좀 마른 체형이 이상적이다. 몸무게가 평균 이상인 사람들이 욕심만으로 도전하기엔 좀 위험하다. 얼음을 지치고 점프하는 과정에서 넘어졌을 때 체중 때문에 마른 사람보다 더 큰 부상을 입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그래도 은반에 대한 동경을 접을 수 없다면 스피드스케이트로 방향을 트는 게 몸에 좋다.
나이가 많은 사람들도 직접 하기보다 보는 것에 만족해야 할 듯하다. 갱년기에 접어든 사람은 뼈가 약해 넘어질 경우 꼬리뼈와 손목 골절 등 부상 위험이 현저히 높다. 나이 오십이 넘으면 피겨 스케이트 강습을 받기도 쉽지 않다.
선수의 아름다운 동작 하나하나 때문에 하나의 공연 장르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피겨 스케이트는 엄연한 동계 스포츠. 운동 효과가 만만치 않다. 전신운동이기 때문에 심폐 기능을 높이는 데 좋고, 하체 근육을 튼튼하게 해 준다. 추운 곳에서 운동을 하다 보면 면역력도 자연스레 높아진다. 감기 등에 골골하던 아이들의 몸이 건강 체질로 바뀌게 된다.
도움말 여승희 롯데월드 아이스링크 강사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 피겨스케이트 실전체험 " 우아한 동작 하나쯤"… 꽈당!
'피겨 스케이트,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다'
18일 목동 아이스링크. 바깥 못지않게 춥다. 오전인데도 빙판은 초등학생부터 아저씨, 아줌마들로 북적인다. 여기에 제2의 김연아가 있지나 않을까. 아이들의 똘망똘망한 눈망울을 보니 의지가 불끈 솟는다. 내가 누군가. 중학교 스케이트부 출신이 아닌가. 트리플 악셀까지는 아니더라도 간단한 스핀 정도는 배울 수 있겠지….
장비 대여소에서 스케이트를 빌렸다(2시간 3,000원). 날이 길어 안전한 특수 피겨스케이트다. 발목을 접질리지 않게 빠듯하게 조여야 한다. 피겨는 돈 많이 드는 스포츠인 줄 알았다. 옛날 얘기다. 프로선수가 되려는 게 아니라면 발 치수만 알면 된다. 그리고 필요한 것은 두툼한 외투와 장갑이다.
가장 먼저 11자 걷기를 배웠다. 강사 진윤기(32)씨는 얼음 위에 파란 매직으로 3m 정도 선을 그렸다. "양 발의 날이 평행이 되게 종종 걸어보세요." 얼음판 위에서 균형을 잡는 기본 훈련이다.
"이까짓 거." 만만해 보였다. 그런데 아니다. 속도를 낼수록 체중이 쏠려 넘어지기 일쑤다. 숨이 차다. 추웠던 빙판에서 땀을 흘리고 있다. 힘들어 하는 것이 티가 났을까. 진씨는 "피겨스케이트는 여성들의 체형 교정에 좋아요. 휜 다리나 비뚤어진 발목이 교정돼 곧은 라인을 갖게 해주니까요"라고 격려한다.
드디어 빙판 위를 씽씽 활주할 차례다. 11자 걷기 자세에서 양다리를 번갈아 하나씩 바깥쪽으로 둥글게 뻗는다. 뻗지 않는 다리의 날이 정확히 앞을 보고 있어야 방향이 틀어지지 않는다.
"처음에는 제자리에서 다리를 뻗었다가 되돌아오는 것을 연습해야 해요." 욕심을 부려 속력을 내다 빼놓을 수 없는 동작을 배웠다. 넘어지기. 사실은 날을 앞으로 향하는 게 익숙해지는 데에만 한 달이 걸린단다. 곧 엉덩이뼈가 아려왔다. 아, 우아한 동작 하나만이라도 배워볼 수 없을까.
부상 위험 때문에 만류하는 강사에게 스핀(제자리 회전)을 가르쳐 달라고 졸랐다. "김연아 선수 보고 오는 사람들이 꼭 욕심내는 동작"이란다. 그러나 스핀 전에 배워야 할 동작이 있다. '크로스'다. 앞으로 활주하면서 오른발을 왼발 바깥에 두어 X자로 꼬았다가 왼발을 빼서 다시 11자로 돌아오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코너를 돈다. 빙판 위에서 한 발로만 지탱해 반원을 그리며 나아가려니 후들후들 떨렸다. 시합 중 넘어진 김연아 선수의 기분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링크를 나서는데 목이 아프다. 고개를 살짝 치켜들고 우아하게 빙판을 누벼야 했건만 내내 발끝만 보았기 때문이다. 강사의 말대로 피겨 스케이트는 손 끝부터 발 끝까지 전부 사용하는 스포츠였다.
하지만 누구나 차근차근 배우기만 하면 되는 '어렵지 않은' 운동이었다. 진씨는 "할아버지, 할머니도 가르쳐 본 적이 있다"고 한다. 단, 한 달 안에 마스터하겠다는 그런 욕심은 없어야 한다. 1년쯤 하면 피겨 스케이트 공인자격증 2급(최상등급은 8급) 정도는 딸 수 있단다.
정영명 인턴기자(이화여대 언론정보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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