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화투쟁이 본격화한 1974년 봄 어느 날 밤, 추기경 명의로 성명이 발표돼 명동성당에 취재하러 갔다. 뒤늦게 온 다른 신문의 기자는 벌게진 얼굴에 술 냄새를 풍기며 추기경의 한자 이름을 홍보 담당자에게 물었다. 추기경은 그 때 할 말을 하지 못하는 언론을 강론을 통해 비판하기도 했는데, '투쟁에 동참은 못할 망정 추기경의 이름도 모르다니' 하고 분개한 나는 "목숨 수 빛날 환!"하고 대신 쏘아 붙였다. 나는 견습이었지만 그 언론계 선배가 한심하다고 생각했다.
길이 찬미 받을 생명과 정신
김수환 추기경의 장례를 앞두고 그 이름을 되새겨 본다. 지금은 하도 한자를 쓰지 않아 김 추기경의 한자이름을 아는 사람이 오히려 드물지만, 목숨이 빛난다는 것은 생명과 정신, 명예가 길이 빛난다는 말과 다름없다. '너희와 모든 이를 위하여' 살았던 87년의 아름답고 장한 생애는 그 자신의 이름은 물론 한국 천주교를 세계에 빛나게 했다. 김 추기경이 선종하자 많은 사람들이 안방 같았던 분, 편안히 쉴 날개 밑, 깃들어 숨을 안식처였다며 애도하고 있다.
그가 이처럼 빛나는 원천은 겸허와 회의, 유머의 힘이라고 생각한다. '김수환은 □□다'라는 말을 채우라고 하자 '바보'라고 즉답했다는 김 추기경은 나이 들수록 더 보기 좋고 맑은 표정으로 바보웃음의 향기를 퍼뜨렸다. 大賢如愚(대현여우), 크게 어진 사람은 어리석어 보인다는데, 가난한 옹기장수의 8남매 중 막내는 아호도 투박함 성실함 바보의 이미지가 떠오르는 옹기(饔器)라고 했다. 본인이 알려지는 것을 원하지 않아 그나마 이 아호는 작년에야 공개됐다고 한다.
옹기는 천주교가 박해 받을 때 신자들이 산에서 구워 내다 팔던 생계수단이었고 복음을 전파한 수단이면서 모든 것, 심지어 오물까지 담을 수 있는 그릇이다.
김 추기경의 수많은 어록 중 가장 인상적인 것은 "머리와 입으로 하는 사랑에는 향기가 없다…사랑이 머리에서 가슴으로 오는 데 70년이 걸렸다"는 말이다. 여러 외국어에 능하지만 참말과 거짓말 두 가지 말을 잘 한다는 유머도 인상적이다. 조계종 종정이었던 성철 스님(1912~1993)은 열반에 들기 전 임종게(臨終偈)에서 "일생동안 남녀무리를 속여서 하늘을 넘치는 죄업이 수미산을 지나친다"고 말했었다.
대현은 이렇게 서로 통하는 것인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김 추기경은 신앙을 확신하는 형이 아니었다고 한다. 사람들에게는 그의 말이 확신에 찬 어조로 들렸을지 몰라도 본인은 늘 내면에서 길을 묻고 찾았다는 것이다. 1969년 추기경 임명 소식을 들었을 때도 "틀림없이 뭐가 잘못된 거야. 이걸 어떡하나, 이걸 어떡하나" 하는 말을 되풀이했다고 한다. "다들 나에게 와서 어렵고 힘든 얘기를 털어놓는데 난 누구와 상의해야 하나"라고 혼잣말을 했다는 김 추기경의 '30년 불면'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김 추기경은 추기경이 되기 직전까지도 하느님 손에서 빠져나갈 궁리를 계속했으며, 사제 수품, 주교 임명 등 중요한 고비를 맞을 때마다 도망치고 싶은 유혹과 남몰래 싸웠다고 한다. 그런 점이 오히려 그의 말과 삶을 더 신뢰할 수 있게 한다. 언제나 겸허하면서, 반성하고 회의하는 인간은 아름답다. 김 추기경의 선종 이후 가톨릭 신자가 아닌 사람들까지 아버지나 할아버지를 잃은 것처럼 슬퍼하며 김 추기경을 추도하는 것은 오히려 당연한 일인 것 같다.
이제 그런 분은 다시 없을 것
오늘 흙에 묻히는 김 추기경의 묘비에는 '주님은 나의 목자 나는 아쉬울 것이 없어라'는 말이 새겨진다고 한다. 당신은 정말 아쉬운 게 없을 것이다. 그러나 남아 있는 사람들은 김 추기경의 부재로 아쉬운 것이 참 많다.
촉(蜀)을 멸망시킨 위(魏)의 장수가 제갈 양이 어떤 사람이었느냐고 물었을 때, 백성들은 "특별히 다른 것은 모르겠으나 어쩐지 그런 분은 이 세상에서 다시 볼 수 없을 것 같다"고 대답했다고 한다. 그 말 그대로 김 추기경과 같은 분을 이제는 어디서도 다시 볼 수 없을 것 같다.
임철순 주필 yc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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