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과의사로 진료실에서 환자를 마주 대한지 15년째다. 크고 작은 보람도 많지만 안타까운 순간도 적지 않게 경험하게 된다.
충분히 치료할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경제적 부담으로 치료를 망설이거나 포기하는 환자들을 수없이 봐야 하는 것도 그 중 하나다. 이 경우 치료가 간단하거나 그 효과가 뛰어날수록 의사로 느끼는 안타까움은 더 커질 수 밖에 없다.
황반변성은 안구에 비정상적으로 생긴 신생혈관이 우리 눈 망막의 중심부인 황반을 파괴하는 질병이다. 발병 후 2년 내에 실명(失明)하기도 하는 무서운 질환이다.
전에는 황반변성으로 손상된 시력은 회복이 불가능했다. 레이저치료나 광역학요법 등으로 시력이 나빠지는 속도를 늦추거나 손상된 시력이라도 유지하는 것이 전부였다.
이런 상황에서 황반변성 치료제인 루센티스의 개발은 희소식이 아닐 수 없었다. 황반변성 진행을 막아줄 뿐만 아니라 손상된 시력을 회복하는 데도 큰 효과를 보이므로 루센티스는 안과 역사상 가장 획기적인 치료제로 평가 받고 있다.
이를 인정하듯 세계적인 과학전문지인 사이언스가 선정한'2006년 10대 혁신적인 연구성과'에 꼽히기도 했다. 사물이 왜곡되고 중심부 시야가 소실된 채 살아야 했던 황반변성 환자들이 루센티스 주사 치료를 통해 일상생활을 자유롭게 할 수 있으며 경제활동도 지속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런데 이런 반가운 소식에도 불구하고 필자는 환자들에게 루센티스 치료를 적극적으로 권할 수가 없다. 건강보험 혜택이 적용되지 않아 약값이 너무 비싸기 때문이다.
주사 1회에 150만원에 달하는 지금의 루센티스 약값은 환자에게 분명 큰 부담이다. 게다가 한 달 간격으로 최소 3회 이상 주사해야 치료효과를 낼 수 있으므로 결과적으로 약값만 450만원 가량이나 된다.
그래서 필자는 황반변성 환자에게 이 치료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기 전에 약값부터 알려준다. 시력이 좋아질 수 있다는 희망적인 말을 하기보다 경제적 부담이 크다는 점을 먼저 전하는 것이 낫다는 생각에서다.
요즘 같이 불황이거나 환자 형편이 좋지 않을 때 치료비 문제가 커다란 걸림돌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럴 때 단지 경제적인 이유로 환자 자신의 삶을 되찾을 수 있는 기회를 포기해야 하는 환자를 보면 매우 안타깝다. 또한 루센티스 치료가 간단한 방법이라 더욱 그렇다.
루센티스는 지난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으로부터 급여 판정을 받긴 했지만 현재 제약사와 건강보험공단과의 약값 협상이 남아있는 상황이다. 이 협상만 제대로 마무리되면 루센티스도 보험이 적용되고 환자부담금은 현재의 3분의 1 수준으로 크게 줄어들 것이다. 덕분에 의사는 환자에게 조금 더 편한 마음으로 최선의 치료를 권하고 시행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의료계에 몸담고 있는 사람으로서 의료보험 재정이라는 큰 틀에 관한 걱정을 떨쳐낼 수 없다. 실명위기에 처한 국내 황반변성 환자만 해도 3,000명 가량으로 추정되고 있다. 또 황반변성 환자는 계속 늘고 있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이들 모두가 보험적용을 받는 루센티스 치료를 받는다면 약제 사용량이 상당히 늘어나 우리나라 보험재정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한 건 당 70만원 내외의 공단 비용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돼 열악한 우리나라 보험재정이 더욱 악화될 수 있다.
지하철 칸에 사람이 많아지면 한 사람 한 사람을 위한 공간은 줄어들기 마련이듯이 한정된 보험재정 하에서 루센티스 보험 적용이 시작되면 그 외의 약물이나 의료행위에 대한 보험 적용 폭은 축소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루센티스 보험 적용은 동전의 양면과도 같은 어려운 문제이다. 모쪼록 실명 위험을 안고 살아가는 황반변성 환자들과 보험재정 마련 방안을 고심해야 하는 공단의 입장이 모두 고려된 최선의 결론이 하루 빨리 나오길 바란다.
유용성 누네안과병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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