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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로 여는 아침] 조용한 이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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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로 여는 아침] 조용한 이웃

입력
2009.02.19 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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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인숙

부엌에 서서

창 밖을 내다본다.

높다랗게 난 작은 창 너머에

나무들이 살고 있다.

나는 이따금 그들의 살림살이를 들여다본다.

잘 보이지는 않는다.

까치집 세 개와 굴뚝 하나는

그들의 살림일까?

꽁지를 까닥거리는 까치 두 마리는?

그 나무들은 수수하게 사는 것 같다.

잔가지들이 무수히 많고 본줄기도 가늘다.

하늘은 그들의 부엌.

지금의 식사는 얇게 저며서 차갑게 식힌 햇살이다.

그리고 봄기운을 한두 방울 떨군

잔잔한 바람을 천천히 오래도록 삼키는 것이다.

나무들과 사귀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다. 우리가 시간을 두고 천천히 천천히 그들을 알아차릴 때까지 그들은 좀처럼 비밀을 우리에게 발설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루 이틀 사흘, 그리고 몇 년이 흐른 후에야 우리들은 한 나무와 겨우 관계를 맺게 된다. 그것도 우리가 잘나서가 아니라 나무들이 우릴 잘 봐주어서.

하늘이라는 부엌, 무한한 그 부엌에서 조리된 나무들의 식사. 차갑게 식힌 햇살 냉채에 한두 방울 떨군 봄기운이라는 참기름. 부엌에서 시인은 얼마나 자주, 얼마나 오랫동안 나무를 바라보았길래 그들의 식사를 엿볼 수가 있었을까?

이 시를 읽으며 문득 마당에 서있는 나의 나무들을 바라본다. 새가 찾아오고 눈이 찾아오고 바람, 그리고 어둠과 밝음, 그 모든 방문을 거느리고 마당에서 살아가는 내 식구. 어떤 식물학자는 식물을 경작하기 시작한 인간의 농경제 역사는 인간이 만든 역사가 아니라 식물들이 만든 역사라고 주장한다.

우리가 경작할 식물들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식물들이 인간이라는 도움꾼을 선택했다는 그의 주장을 들어보면 일리가 있어 보인다. 아무려나 인간이 이 지구의 주인일까? 인간보다 수백배, 더 오래 이 지구에서 살아온 나무들은 그래서 하늘이라는 무한의, 지붕없는 부엌을 가진 것이다.

허수경ㆍ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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