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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세 양수남, 70세 한수분과 17일 고교 졸업하다/ 파킨슨 병 딛고 이룬 '만학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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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세 양수남, 70세 한수분과 17일 고교 졸업하다/ 파킨슨 병 딛고 이룬 '만학의 꿈'

입력
2009.02.19 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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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 오전 서울 용산구 원효로1가의 한 주택. 친자매처럼 다정해 보이는 두 여성이 한껏 차려 입고 외출 채비를 하느라 분주하다. 17일 고등학교 졸업식을 앞두고 예행연습 길에 나서는 집 주인 양수남(59)씨와 40년지기 이웃 한수분(70)씨의 볼빛은 10대 소녀들마냥 발그레하다.

두 사람이 만학의 열정을 불태운 진형고등학교는 서울 종로구 숭인동에 위치한 성인대상 고등학교 학력인정기관. 이들은 2007년 중학교 학력인정기관인 수도중학교를 나란히 졸업하고 이 학교에 입학, 꿈에 그리던 '여고생'이 됐다.

집을 나서 전철역으로 향하는 길에서 양씨가 중심을 잃고 휘청이자 한씨가 얼른 붙들어 세우고는 "오늘 날씨 정말 춥네" 하며 양씨의 옷깃을 꼭 여며준다. 4년간 수업 있는 날이면 하루도 빠짐없이 함께 한 등교 길의 익숙한 풍경이다.

칠순 나이에 고교 졸업장을 쥐게 된 한씨의 감격도 크겠지만, 모진 병마와 싸우며 뜻을 이룬 동생 양씨 만은 못할 듯하다.

경기 이천의 가난한 농사꾼 집안에서 태어난 양씨는 겨우 초등학교만 나왔다. 열 아홉 살에 돈 벌러 상경했다가 이듬해 지금의 남편을 만나 가정을 꾸렸다.

풍족하진 않아도 단란한 생활에 불행이 닥친 것은 1992년. "갑자기 한 쪽 팔이 저려오고 몸에 힘이 풀리면서 떨리는 증세가 나타나서 병원에 갔는데 병명을 모르는 거에요." 2년간 병원을 전전한 끝에 파킨슨병 진단을 받았다.

병마와의 외롭고 긴 싸움에 지친 양씨에게 2004년 희망이 찾아 들었다. 한 동네 살며 친언니처럼 따르던 한씨가 중학교 공부를 시작한다는 말을 듣고 따라 나섰다. 한씨는 "나도 어렵게 마음 먹었는데 동생이 함께 하고 싶다는 말에 놀랐다"고 회고했다.

그 후 4년 간 한씨는 매일 아침 8시면 어김없이 집에 들러 양씨를 부축해 함께 등교했다. "나도 나이가 들어 힘들긴 했지만 아픈 동생이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니 나도 공부에 대한 의욕이 더 생겨 오히려 도움이 됐어요." 한씨는 공치사를 한사코 사양했다.

양씨의 공부 열정은 대단했다. 양씨는 "팔이 저려오고 얼굴이 마비될 때도 공부를 할 수 있다는 희망에 버틸 수 있었다"고 말했다. 공부뿐 아니라 40~70대의 동기생들과 알콩달콩 학창 시절의 추억을 만드는 데도 열심이었다.

한씨는 "동생이 몸이 불편한데도 남편의 도움을 받아 과일이나 사탕 따위를 간식으로 자주 싸오고 붙임성도 좋아서 같은 반 60명 학생들 사이에서 인기가 많았다"고 귀뜸했다.

담임인 정인숙 교사는 "처음 수남씨를 만났을 때는 몸 상태가 안 좋아서 학업을 마칠 수 있을까 걱정했는데 꿋꿋하게 공부하는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며 감동을 받았다"고 말했다. 정 교사는 "수남씨는 음악시간을 특히 좋아했다"며 "얼굴까지 마비돼 웃음 짓기도 힘든데 노래를 들으면 저절로 미소가 나오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고 전했다.

하루도 빠지지 않고 학업에 열중하던 양씨에게 지난해 1월 또 한 차례 큰 시련이 왔다. 일산의 한 고등학교에서 관리인으로 일하던 아들 대용(당시 34세)씨가 뇌출혈로 쓰러져 뇌사상태에 있다가 숨진 것이다. 자주 전화를 걸어 늦은 나이에 공부하는 어머니를 응원해주던 자상한 아들이었다. 아들은 하늘 나라로 가는 길에도 장기기증으로 6명의 생명을 살렸다.

양씨는 "아들을 잃고 공부를 중단할까 하는 생각도 정말 많이 했다. 하지만 아들이 하늘에서도 엄마가 끝까지 공부하는 모습을 원할 거라는 생각이 들어 포기할 수 없었다"면서 눈물을 훔쳤다. 한씨도 "아마 4년 동안 같이 공부 하면서 그 때가 우리에게 가장 힘들었던 시기였을 것"이라며 아들 생각에 눈물 짓는 동생의 어깨를 가만히 다독였다.

요즘 양씨는 공부를 더해서 대학까지 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다. 하지만 그동안 힘들게 버텨온 모습을 지켜보며 안쓰러웠던 남편 엄기덕(67)씨는 "이제 먼저 병을 더 치료하고 공부를 더해도 했으면 좋겠다"며 학업을 잠시 쉬라고 권했다. 양씨도 고개를 끄덕였지만, "잠시"라는 단서를 붙였다. "건강이 좋아지면 꼭 대학에 가서 공부를 더 할 거예요."

김성환 기자 bluebird@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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