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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워낭소리'와 속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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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워낭소리'와 속도전

입력
2009.02.19 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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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순 농부는 마흔 살 소를 끌고 사무치게 아름다운 전원을 걷는다. 황토 먼지를 폴폴 일으키며 터벅터벅 한걸음 한걸음 내딛는다. 그 걸음은 매우 느리고, 그들이 살아 왔던 세월만큼 팍팍한 동시에 안온하다. 인간으로 치면 100세를 넘긴 소는 깊은 병으로 사망 선고를 받아 농부의 가슴을 저미게 한다. 늙디 늙은 농부에게도 살 날은 그리 많지 않다. 하지만 둘 모두 다가온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나 삶에 대한 회한은 없다. 그저 또 다른 하루를 지금까지처럼 아름답게 살아낼 뿐이다.

이충렬 감독의 영화 <워낭소리> 가 공전의 히트작이 됐다. 독립영화, 더구나 다큐멘터리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결과다. 지난 주말까지 60만명의 관객이 들었다고 한다. 이명박 대통령과 부인 김윤옥 여사도 15일 서울 동숭동 아트센터에서 영화를 봤다.

이 영화가 사람들의 시선을 잡아챈 이유는 뭘까. 영화는 철저하게 모르는 필자지만 '느림의 미학, 느림의 소중함에 대한 새로운 발견'이라는 많은 영화평론가들의 해석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온 세계는 산업혁명 이후 속도만을 추구해 왔다. '빨리 빨리'로 곧잘 묘사되곤 하는 한국 사회는 더더욱 그랬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느린 것은 열등하다고 여기게 됐다. 그러나 지나친 속도 제일주의는 정치ㆍ경제ㆍ사회ㆍ문화적 양극화, 환경 파괴, 가족의 와해, 자살률의 증가 같은 부작용을 남겼다. 죽자 사자 앞으로만 가다 보니 생긴 이 같은 문제점을 치유하려다 보면 엄청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부작용 치유에 소요되는 비용이 느리게 갈 때 드는 비용보다 더 많을 수도 있다. 느린 것이 더 효율적이라는 충격적 교훈을 얻게 해 줬다는 점에서 이 영화는 무척 유익했다.

여권이 2월 임시국회에서 법안 전쟁을 속도전으로 밀어붙일 태세다. 내년부터는 선거가 계속 있어 개혁을 추진할 수 없기 때문에 이명박 정부 2년차인 올해 승부를 보겠다고 한다. 이를 위해 쟁점 법안부터 조속히 통과시킨다는 것이다. 최근에는 당내 친이명박계 각 파벌이 빈번히 접촉하면서 법안 전쟁과 그 이후 국정 운영에서의 협력 방안을 모색한다는 얘기도 들린다.

연말연초 여권의 쟁점 법안 처리를 실패로 이끈 것은 바로 속도전이었다. 법안이 옳고 그르고의 얘기가 아니다. 지나치게 급하게 서두른 것이 문제였다. 야당이야 당연히 반대한다고 하더라도 친박근혜계가 비토하고 친이계 내에서도 불만의 목소리가 나왔던 것은 조건이 충분히 성숙하지 못한 상태에서 강행하려 했다는 사실을 말해 주고 있다. 2월국회에서도 같은 식으로 하면 백전백패다. 친이가 한 목소리를 낸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친이만 모여 단독 통과라도 시킨다면 문제는 더욱 커질 것이다.

도대체 쟁점 법안 처리 등 개혁을 반드시 올해 안에 끝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유를 모르겠다. 인기 없는 정책을 추진할 경우 선거에 불리해 선거가 없는 올해 다 해결해야 한다는 애긴데 정당한 개혁이라면 오히려 자신 있게 선거 과정에서 국민의 판단을 물어야 하는 것 아닌가.

이명박 정부는 아직 4년이나 남았다. 레임덕 1년을 감안하더라도 아직 일할 수 있는 시간이 많다. 조급해 하지 말고 하나하나 해 가면 된다. 이 대통령의 <워낭소리> 관람이 '느림의 효율성'을 되새기는 계기가 됐으면 하고 바라는 사람이 필자 하나만은 아닐 것이다.

이은호 정치부 차장 leeeun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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