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故) 김수환 추기경이 1980년 5ㆍ18광주민중항쟁 당시 희생자들과 부상자들을 걱정하는 편지와 함께 거액의 돈을 보낸 사실이 29년 만에 밝혀졌다.
18일 당시 천주교 광주대교구장이었던 윤공희 대주교(86)에 따르면 김 추기경은 계엄군이 시민군에 밀려 광주 외곽으로 후퇴하고 봉쇄작전을 펼치던 1980년 5월 23일 군종 신부를 통해 광주대교구에 편지를 보내왔다. 김 추기경은 1장짜리 편지에서 "광주에서 많은 사람이 다쳤다는 소식을 듣고 걱정이 크다. 어려운 상황이지만 평화적으로 잘 해결됐으면 좋겠다"고 적었다.
급하게 적은 듯한 짧은 편지 속에는 당시로서는 큰 액수인 100만원짜리 수표 1장이 들어 있었다. 이 돈은 광주대교구 정의평화위원회에 맡겨져 부상자 치료와 구속자 영치금 등으로 쓰였다.
김 추기경은 당시 광주에서 계엄군의 무자비한 진압작전으로 수많은 희생자가 발생했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직접 편지를 쓴 것으로 전해졌다. 당시 광주로 진입하는 교통수단이 모두 끊긴 데다 계엄군의 삼엄한 통제로 편지 전달이 어렵자, 김 추기경은 5월 20일 군종신부를 광주로 보내 편지를 전했다. 이 편지는 22일 광주 상무대의 장용복 군종신부에게 전달됐고 다음날 시민군과 계엄군이 대치하고 있던 광주 서구 화정동 옛 국군통합병원 앞에서 조비오 신부와 오병문 전 교육부 장관(당시 전남대 교수) 등에게 인계돼 윤 대주교에게 전해졌다.
윤 대주교는 "군부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내란죄로 몰아가고 서슬 퍼런 검열이 존재하던 시절이라 편지 속에 많은 이야기를 담지는 못했지만 광주시민의 안전을 걱정하는 김 추기경의 마음은 충분히 느껴졌다"고 회고했다.
광주민중항쟁의 진실을 알리고자 했던 김 추기경은 1984년 방한한 요한 바오로 2세의 첫 방문지로 광주를 선정했다. 당시 광주를 방문한 교황은 미사가 예정된 무등경기장으로 바로 가지 않고 시민들이 계엄군에 의해 무참히 희생됐던 금남로와 전남도청 앞 광장을 차로 한바퀴 돌며 시민들을 위로했다.
김 추기경은 생전에 "광주의 5월은 가장 고통스러운 기억"이라고 말했을 정도로 광주의 아픔을 함께 하려 했다.
윤 대주교는 "김 추기경은 살아있을 때 광주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며 "당시 교황청 대사를 통해 미국대사 등을 만나 문제를 해결해 보려 했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던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광주=김종구기자 sor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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