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교육이 시골학교를 살렸다." 16일 발표된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 결과, 서울 등 대도시를 제치고 학력 우수 명단에 당당히 이름을 올린 교육 낙후 지역에 쏟아진 찬사다. 언론은 이들 지역이 방과후 학교와 지역 특성화 교육 등 '공교육' 내실화를 통해 학생들의 실력을 끌어 올린 점을 집중 조명했다.
과연 그럴까? 해당 지역의 평가 결과를 유심히 살펴보면 공교육의 힘으로만 단정짓기에는 미심쩍은 구석이 곳곳에서 발견된다.
전북 임실은 초등학교 6학년의 기초학력 미달 비율이 전국 180개 교육청 가운데 가장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영어, 사회 과목은 미달자가 1명도 없었다. 안병만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조차 "어떻게 이런 결과를 냈느냐"며 시골학교의 예상치 못한 선전에 놀라워 했다.
하지만 이 지역 중학교 3학년의 평가 결과를 보면 사정이 달라진다. 중3의 기초학력 미달 비율이 10명 중 1명 꼴(11.9%ㆍ5과목 평균)로, 전국 평균인 10.4%보다 높다.
성취도 수준이 목표의 50% 이상을 달성한 경우인 보통학력 이상 비율을 보면 더욱 그렇다. 이미 초6 단계에서 국ㆍ영ㆍ수 등 주요 과목의 순위가 100위권인데, 중3에 가면 그 비율이 더 낮아진다. 다시 말해 수업 진도를 아예 따라가지 못하는 학습 부진아는 없지만, 평균 실력을 갖춘 학생도 그리 많지 않다는 의미다.
임실뿐이 아니다. 경북 울릉은 전국에서 유일하게 초등 수학 기초학력 미달자가 없지만, 중3의 경우 그 비율이 8.8%에 달한다. 초등 국어 보통학력이상이 90.4%를 기록, 전국 4위를 차지한 강원 양구도 중3 순위(89위ㆍ 58.2%)는 뚝 떨어진다.
공교육이 상급 학년으로 갈수록 힘을 쓰지 못할 뿐더러, 그 효과를 논하는 것이 얼마나 성급한 일인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초등 단계에서 시골 학교의 선전을 가능케 한 요인으로는 우선 학생수가 적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임실의 초등학교 수는 14곳, 학생수도 1,400여명에 불과하다. 울릉도 내 6학년 학생도 60여명밖에 되지 않는다. 그만큼 교사들의 1대1 눈높이 교육이 용이하다는 얘기다. 경기도교육청 관계자는 "대도시에 비해 학급당 학생수가 적은 농촌 지역은 교사가 실력이 부족한 학생을 꼼꼼히 지도할 수 있어 기초학력 미달자 비율이 낮게 나온다"고 말했다.
반면 사교육이 위력을 발휘하는 중등 단계에서 그 효과는 현격히 줄어든다. 임실교육청 관계자는 "초등학생들은 학교에서 받는 교육의 양이 실력과 비례하지만 중학교에 진학하면 과외나 학원을 선호한다"며 "사교육 기관 하나 없는 농촌 지역 학교들이 대도시와 경쟁하기에 버거운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실제 대전 서부와 전남 나주를 비교해 보면 두 지역은 초등 국어 보통학력 이상 비율에서 각각 3위, 10위를 차지했다. 그러나 중3에서 나주는 131위로 뚝 떨어진 반면, 대전 서부는 9위로 큰 변동이 없었다. 확실한 증거는 역시 '사교육 1번지'인 서울 강남이다. 강남은 기초학력 미달은 물론, 보통학력 이상 비율에서도 초ㆍ중등 모두 1위를 싹쓸이 했다.
평가의 우선 순위를 어느 쪽에 두느냐에 따라 해석이 달라질 수도 있다. 학생수가 많은 대도시 지역은 우수학생 규모로 학교의 교육수준을 가늠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최저학력 기준을 넘게 하려는 노력에 소홀하기 쉽다. 농촌 지역이 기초학력 미달 비율에서, 대도시가 보통학력 이상 비율에서 강세를 보인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강태중 중앙대 교육학과 교수는 "시골 학교들은 명성에 대한 압력이 덜한 탓에 성적이 바닥권인 학생들을 보통 학생으로 만드는 데 유리할 뿐"이라며 "단순히 최저수준 학생이 적다고 시골 학교가 더 잘 가르친다는 논리는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김이삭 기자 hir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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