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ㆍ19개각으로 물러난 김동수 전 기획재정부 1차관은 한 달이 채 지나지도 않은 지난 13일 진동수 현 금융위원장의 후임인 수출입은행장으로 컴백했다. 사실상 현직 관료가 그대로 산하 공기업으로 자리를 옮긴 셈. 더욱이 수출입은행은 지난해 5월 재정부가 '공모 활성화 공공기관'으로 선정해놓고도 이번엔 공모 절차도 생략했다.
이명박 정부의 공공기관 개혁이 헛바퀴를 돌고 있다. 참여정부의 방만한 공공기관 운영의 주된 원인으로 코드 인사를 비판해온 이명박 정부도 노골적인 낙하산 관행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는 마찬가지. 토지공사 이종상(전 서울시 균형발전추진본부장), 인천항만공사 김종태(전 해양수산부 기획관리실장) 사장 등 적지 않은 기관에서 현직ㆍ퇴직 관료의 낙하산, 보은 인사로 논란을 빚었다.
민주노총이 지난해말 밝힌 공공기관의 임원 현황보고서에 따르면, 공공기관 중 101곳이 이명박 대통령과 직간접으로 관련이 있는 사람들로 채워져 있다. 최근 정부가 한국거래소를 준정부기관으로 지정한 것에 대해서도 거래소 측은 낙하산 인사 시도가 실패한 뒤 보복성 조치로 보는 등 일각에선 낙하산 자리를 하나 더 늘리기 위한 것이라는 설까지 제기되고 있다.
관료 낙하산, 부처와 공기업의 공생
관료 낙하산의 문제는 각 부처의 밥그릇 챙기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관료 낙하산의 배경에는 부처와 공기업의 '공생' 구조도 작용한다는 지적이다. 때문에 상당수 공기업 노조는 관료 출신 인사를 은근히 환영하기도 한다.
공기업이 정권 또는 소관부처와의 끈끈한 유착관계에 의존해, 독자적인 생존 경쟁력 없이도 명을 이어간다는 분석도 나왔다. 한성대 민희철 교수가 2001년~2005년 27개 공기업의 CEO 출신과 경영실적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관료 출신 CEO가 운영하는 공기업은 내부 승진자가 경영할 때에 비해 정부로부터 받는 보조금 액수(자산대비)가 내부 승진자가 경영할 때보다 4.2% 정도 높았다.
관료 정치인 등 낙하산 인사가 많을수록 정부 보조금에 대한 의존이 높아지고 자체 수입 비중이 낮아지는 등 공기업의 경영 비효율성이 높아졌다.
낙하산 인사 뿌리 뽑기엔 공모제도 역부족
현 정부는 공공기관의 낙하산 및 코드 인사 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대안으로 공모제 구체안을 내놓았다. 90개 대형공공기관을 공모 활성화 기관으로 선정, 민간 전문가 영입을 적극 추진하고 CEO 선임에서 투명성을 높이겠다는 것. 하지만 주택금융공사, 코트라, 한국전력, 석유공사, 기술신용보증기금, 가스공사, 수출보험공사, 교통안전공단, 국민건강보험공단 등에서 재공모가 속출했다. 정부 관계자는 "추천제에 비해 공모제는 시간이나 비용은 막대한 반면 효율이 떨어진다"고 말했다.
일본 정부도 퇴직 관료 낙하산 관행을 해결하기 위해 각 부처의 퇴직관료 취업 알선과 2차례 이상 낙하산 인사를 금지하는 개혁안을 내놓았다. 하지만 정부 부처가 직접 퇴직관료 취업을 알선해오던 것을 전문 기관에 맡기겠다는 구상으로, 낙하산 관행이 워낙 뿌리 깊이 박혀있다 보니 완전한 근절을 엄두도 내지 못했다.
관료출신 인력 풀 없이 공공기관 CEO를 채우기가 쉽지도 않다. 문제는 공모를 실시해도 능력 있는 외부 민간 전문가의 참여를 이끌어낼 만한 분위기가 형성돼 있지를 못하다는 점이다. '무늬만 공모'일 뿐 실제론 정부가 사람을 정해놓고 절차를 진행하는 경우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권해수 한성대 교수(행정학과)는 "관료 출신들은 인맥, 정보 등을 이용해 확실히 자리를 만들어 놓은 뒤 공모에 참여하는 것도 주지의 사실"이라며 "민간전문가들이 들러리만 서고 망신만 살까봐 아예 공모에 참여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보니, 결국 능력과 상관없이 관료가 낙점 되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문향란 기자 iam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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