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동수 신임 금융위원장은 지난 일요일 금융연수원에 은행장들을 불러놓고 2가지 커다란 정책현안에 대해 담판을 지었다. 은행장들은 이 자리에서 올해 만기가 도래하는 160조원 규모의 중소기업 대출에 대해 1년간 만기를 연장해 주기로 했으며, 경영간섭 우려 등으로 회피했던 자본확충펀드도 사용키로 전원 합의했다. 이로써 중소기업의 유동성 기근은 일단 어느 정도 풀릴 수 있게 됐다.
그러나 모든 중소기업 대출의 만기를 연장해 줄 경우 기업 구조조정이 더디게 진행되고 기업의 잠재 부실을 키울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마이너스 통장'식 자본 지원
대부분의 시중은행들은 작년 정부가 제시한 자본확충펀드를 신청하는 것을 꺼려왔다. 은행이 개별적으로 펀드를 신청하면 '부실은행'으로 찍힐 수 있을 뿐 아니라, 정부의 경영권 간섭까지 우려됐기 때문이다.
때문에 금융당국과 은행장들은 지난 주말 워크숍에서 은행별로 자본확충펀드를 이용할 수 있는 이용한도(크레디트라인)를 설정해 필요할 때 꺼내 쓸 수 있도록 하는 방식을 고안했던 것. 금융위 관계자는 "20조원 규모의 자본확충펀드를 조성해 은행별로 이용한도를 부여하는 일종의 '마이너스통장'이라고 보면 된다"고 설명했다.
금융당국은 또 펀드지원을 받아 중소기업 대출을 확대하거나 기업 구조조정에 나설 경우 경영권에 간섭하지 않겠다는 입장도 제시했다. 금융당국은 자본확충펀드의 사용용도와 지원조건 등과 관련해서도 은행장들의 제안을 최대한 반영해 이르면 이번 주 안에 구체적인 방안을 결정하기로 했다.
그러나 이 같은 방침이 곧 자본확충펀드 활성화로 이어질지는 좀더 두고 봐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한 은행 관계자는 "결국 마이너스통장을 개설하는 것과 마이너스대출을 쓰는 것은 별개일 수 있다"며 "당장 자본확충펀드를 사용할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은행 관계자는 "경기침체가 2년 이상 지속될 거라는 전망 속에서 1년 만기 연장은 큰 의미가 없다"며 "더 빨리 구조조정을 통해 잠재부실을 털어내는 것이 급선무"라고 지적했다.
중소기업 대출 만기 연장
금융당국과 은행이 올해 만기 도래하는 중소기업 대출에 대해 원칙적으로 전액 만기 연장해 주기로 함에 따라 중소기업의 자금난이 덜어질 것으로 보인다. 신용보증기관의 보증이 붙은 대출은 물론 보증이 없는 중소기업의 일반담보 및 신용대출도 폐업이나 부도 등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만기 연장 대상이 된다. 은행권의 중소기업 대출 잔액은 424조원으로 이중 보증부 대출 34조원을 포함해 160조원 정도의 만기가 올해 돌아온다.
그러나 이는 거의 모든 중소기업에 대한 구제조치나 다름없어 구조조정을 지연시킬 수도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은행들이 지금도 중소기업 대출의 90% 이상을 만기 연장해주는 상황에서 이를 100% 가까이로 끌어올리면 퇴출돼야 할 한계기업에 대한 부담까지 계속 은행이 지고 가야 한다는 것. 또한 부실기업에 돈이 묶여 있으면 그만큼 우량기업으로 갈 돈도 줄어들어 결국 정부가 주장하는 '살리는 구조조정'이나 '산업체질 개선'도 그만큼 힘들어진다는 지적이다.
이에 대해 시중은행 관계자는 "정부대책의 큰 방향성은 옳지만, '정부 돈 못 쓰면 바보'라는 말이 안 나오기 위해 세부적인 기준을 좀더 다듬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문준모 기자 moonj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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