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고 김수환 추기경이 잠든 명동성당을 찾은 전두환(78) 전 대통령은 방명록에 '제12대 대통령 전두환'이라고 적고 합장으로 예를 표했다. 한국 현대사에서 가장 껄끄러운 관계에 있었던 두 사람은, 그렇게 마지막 만남을 가졌다.
제5공화국이 태동하던 순간부터 김 추기경은 전 전 대통령의 가장 강력한 비판자였다. 1979년 유신정권의 갑작스러운 종말 뒤, 고인은 불안한 '서울의 봄' 속에서 신군부 세력의 움직임을 주시하고 있었다. 12ㆍ12쿠데타를 성공시킨 전두환 당시 보안사령관의 면전에서 고인은 "서부활극을 보는 것 같았다. 서부영화를 보면 총을 먼저 빼든 사람이 이기지 않느냐"는 말을 서슴지 않았다.
1980년 5월 광주에서 학살이 벌어지자 고인의 비판은 강도를 더했다. 광주의 진실을 알리는 데 교회가 앞장서도록 다그치고, 재야 인사들과 연대해 시국성명을 발표했다. 고인은 훗날 "광주에 내려가 시민들과 함께 피를 흘렸다면 그토록 괴롭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그 시절의 아픔을 표현했다. 전두환 정권에게 김수환 추기경은 내내 '눈엣가시'일 수밖에 없었다.
전두환 정권 말기 고인은 군사정권의 연장을 막는 6월항쟁의 앞줄에 섰다. 1987년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이 터지자 추모미사를 열고 "이 정권의 뿌리에 양심과 도덕이라는 것이 있느냐. 총칼의 힘밖에 없다"고 질타했다. '독재타도' '호헌철폐'를 외치다 공권력에 쫓긴 학생들이 명동성당에 피신하자, "학생들을 데려가려면 먼저 나를 밟고, 그 다음 신부와 수녀들을 밟고 지나가라"고 말하며 경찰의 성당 진입을 막아냈다.
전 전 대통령은 이날 고인과의 관계를 묻는 질문에 군인 시절의 인연과 1984년 교황 방문 때의 일화 등을 소개했다. 그러나 질긴 '악연'에 대해서는 끝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20여년 전 무소불위였던 자신의 권력이 차마 미치지 못했던 소도(蘇塗)에서, 그는 녹차를 한 잔 마시고 잠깐 상념에 잠겼다가 돌아갔다.
유상호기자 shy@hk.co.kr
장재용기자 jyj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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