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영혼의 아버지, 가시는 듯 돌아오소서"
김수환 추기경님! 지금 어디로 떠나시는지요? 아직도 철모르는 우리를 그대로 두시고 홀연히 어디로 떠나시는지요? 가난한 우리들 영혼의 아버지, 김수환 추기경님! 그냥 그렇게 가시는 듯 돌아오소서. 돌아오셔서 우리의 어깨를 쓰다듬어 주세요. 아직 밤하늘에 별들은 빛나고 있는데, 별들을 빛나게 하기 위하여 어둠도 저토록 깊어지는데, 하늘나라에도 명동성당 하나 세우시기 위해 그렇게 바쁜 걸음 걸으시는 건가요? 울다가 울다가 더 이상 아무 데도 찾아갈 데 없을 때, 그래도 힘을 내고 찾아와 기도하라고 천국에도 명동성당 세우러 가시는 길인가요?
명동성당의 가장 튼튼한 기둥이셨던 김수환 스테파노 추기경님! 지금 명동성당의 기둥이 흔들립니다. 명동성당의 지붕 위에 내리던 별빛들도 눈물을 흘립니다. 달빛은 이미 눈물에 젖어 검은 구름 속으로 숨어버렸습니다. 명동성당을 오가던 수많은 발걸음들도 그대로 얼어붙어 버렸습니다. 명동성당의 종소리도 얼어붙어 들리지 않습니다.
저는 오늘 우연히 어느 잡지를 보다가 추기경님께서 교황 바오로6세에게 추기경 반지를 받는 모습이 담긴 사진을 보았습니다. 그 사진을 보면서 '추기경님께서 편찮으시다는데 이제 봄이 오면 다시 민들레처럼 피어나실 거야'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추기경님, 지금 어디로 가셨단 말입니까. 추기경님께서 주님의 품안에 안기고 싶으시듯 저희들은 추기경님의 품안에 안기고 싶습니다.
추기경님, 언제 다시 추기경님의 그 따뜻한 미소를 뵐 수 있을까요. 명동성당을 향해 걸어가던 그 발걸음들이 언제 다시 사랑의 활기를 찾을 수 있을까요.
저는 추기경님을 늘 뵙지 못해도 늘 뵙고 있었습니다. 그대로 제 육친의 아버님인 듯 편안해서 마치 당신의 아들인 양 마음속으로 어리광을 피우곤 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추기경님께서는 그 깊고 맑은 눈으로 저를 그윽이 바라봐주셨지요. '그래도 기도하면서 열심히 살아라', 늘 침묵으로 용기를 북돋아 주셨지요. 저 유신의 70년대와 저 통곡의 80년대를 살아오면서 추기경님의 미소만 보면 다시 힘이 솟았습니다. 치솟아 오르는 분노를 어쩌지 못해 비틀거릴 때도 추기경님의 미소만 보면 그 분노가 고요히 가라앉았습니다.
몇 해 전, 추기경님께서는 모교인 동성고등학교에 가셔서 자화상을 그리시고 '바보야' 라고 제목을 다셨지요. 그러시면서 "내가 제일 바보 같다"는 말씀도 하셨습니다. 저는 신문을 통해 그 그림을 보면서 '맞아, 추기경님은 아이야, 아이! 어쩜 이렇게 초등학생이 그린 그림하고 똑같을까' 하고 생각했습니다.
추기경님! 이 세상에 바보는 많지만 추기경님과 같은 '참된 바보'는 없었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을 줄 뻔히 알면서도 피하지 않고 그대로 죽어간 '바보 예수님'을 그대로 닮으신 추기경님이 계셨기 때문에 사랑이 결핍된 우리 사회에 그래도 사랑의 물결이 고요히 흘렀습니다.
추기경님, 이제 다시 돌아오고 계시지요. 요즘같이 살기 어려운 때에 추기경님이 꼭 돌아와 계셔야 합니다. 추기경님이 그 자리에 그대로 계심으로써 우리는 힘과 용기를 얻고 희망을 가졌습니다. 제가 '김수환 추기경님의 기도하는 손'이라는 시를 쓴 적이 있는데 이제 추기경님을 위한 시를 더 많이 쓰겠습니다. 저희들은 추기경님의 그 맑은 미소와 유머 없이는 이 춥고 배고픈 혹한의 날들을 견뎌내기 어렵습니다. 추기경님이 돌아오셔야 이 땅에 봄이 옵니다. 추기경님! 부디, 부디, 돌아오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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