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는 오르간 건반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보기로 결심하였다 E와 F반음 사이의 틈에 손톱을 밀어 넣었다 대체 이 곳엔 어떤 음이 있었던 것일까'
정재학 시인이 지난해 발표한 시집 <광대 소년의 거꾸로 도는 지구> 중 '미분(微分) - 금기'라는 시의 서두다. 결과적으로, 저 시는 현대음악 작곡가 강석희(75)씨의 창작법을 놀라우리만치 충실하게 재현하고 있다. 광대>
E는 흔히 말하는 '미'고 F는 '파'다. 두 음은 반음 관계여서 그 사이에는 딴 음이 들어올 수 없다고 우리는 배웠다. 그러나 그 공간에서 또 다른 음 현상을 길어올리는 것이 현대음악이다.
작업실에서 이뤄진 인터뷰를 통해, 그는 영원한 청년임을 입증했다. 여전히 젊고, 여전히 개성적이다. 오선이 44줄 그려진 거대한 악보(보통은 22줄)에 깨알 같은 음표나 기호를 그려 넣는다.
1966년 한국 최초의 전자음악 '원색의 향연'을 발표하고, 3년 뒤 '현대 음악제(Pan Music Festival)'를 시작하는 등 왕성한 활동으로 한국 현대음악을 온전히 대표해 온 그는 한 켠에 야전침대를 갖춘 작업실에서 여전히 정진 중이다. 싱크대에는 그릇들이 잘 말려지고 있었다.
그는 "쓸 작품이 많다"고 했다. 자신이 쓰고 싶은 작품이 끊임없이 생기고, 써 줘야 할 작품 역시 줄을 잇고 있다는 의미다. 세계가 들었던 88올림픽 개ㆍ폐막식 음악 'Prometheus Kommt'는 그 일례다.
- 가장 최근 작곡한 곡과 지금 쓰고 있는 작품은 뭔가.
"9월 중순 바르샤바 라디오 심포니가 '마림바를 위한 콘체르토'를 초연했다. 나로서는 처음으로 타악기(마림바)를 내세운 협주곡이다. 그 교향악단이 국내 음악회사 OPUS를 통해 위촉해 왔다. 프로 작가가 위촉을 받지 않고 쓰는 경우란 거의 없다. 그 작품을 계기로 심포니까지 위촉받았는데, 암스테르담 콘서트헤보가 내년 5월 서울서 초연할 예정이다."
- 현재 구상중인 작품은.
"독일 작가 볼프강 부르데의 대본에 근거한 2시간짜리 그랜드 오페라 '싯달타'다. 2000년 학교(서울대 작곡과) 퇴임 전까지는 별로 못 썼는데, 요즘이 학교 있을 때보다 더 바쁜 셈이다."
- 제2의 전성기인가.
"이런 일 하는 게 아주 기분 좋다. 창작의 고통만큼 즐거운 건 없으니까. 젊을 때는 밤에만, 나이가 좀 들어서는 낮에만 썼는데, 요즘은 들쭉날쭉이다."
- 그런데 작품 번호(op)는 왜 안 붙이나.
"원래 op란 완성도가 매우 높은 작품에만 붙이는 것이다. 누군가가 붙여 주겠지."
- 신작들에서의 강조점은.
"타악기를 위한 작품이므로 리듬이 매우 중요하다. 농악의 리듬을 내 식으로 해석하고 있다. 사물놀이적인 패턴도 응용하므로, 더러 한국적인 선율이 들릴 수도 있겠다. 그러나 나는 '한국적'이란 가치를 염두에 둔 적이 없다. 나의 모든 작품은 온전히 나만의 세계다."
- 사회적 함의보다 자기 완성을 추구한다는 의미의 '예술적 이기주의자'인가.
"과학적 이기주의자라는 말이 더 나을 듯하다. 최선을 다해 자기 세계를 완성한다는 뜻에서 하는 말이다. 막내가 대중음악을 작곡하는데 나더러 '쉽게 쓰면 사람들이 좋아하니 아버지도 잘 생각해 보시라'고 하더라. 그러나 나는 좋은 연주가 있으면 바로 전달된다는 믿음으로 작업하고 있다."
- 자신의 작품과 한국 연주자들의 궁합은.
"요즘은 한국 연주자들의 수준이 높아, (내 작곡 의도가) 잘 전달된다. 예를 들어 1997년 쓴 '피아노 콘체르토'는 백건우의 연주로 파리에서 초연됐는데 기립 박수를 받았다. 1년 뒤 예술의전당에서 프랑스인 지휘자, 서울시향의 연주로 펼쳐졌는데 마찬가지였다. 예술은 쉬우냐 어려우냐의 문제가 아니라 결과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 그러나 일반에게 현대음악은 여전히 난해하다. 소통의 계기는 어디 있다고 생각하나.
"작품을 많이 접해야 청중의 수준이 상승된다. 한국 청중은 '백 투 더 패스트'(back to the past)다. 현대를 망각하는 경향은 한국이 특히 심하다. 편중된 학교 교육 때문이다. 중고등 학교부터 워크숍을 갖는 게 효과적인 방법인데, 크게 보아 우리 사회의 발전ㆍ진화와 함께 해결돼야 할 문제다."
- 한때 '해설과 함께 듣는 현대음악' 처럼 대중화의 움직임이 반짝 일기도 했는데.
"현대성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극소수다. 한국에서 현대란 '바께스에 담아서 들이부은' 충격이었는데, 여전히 소화 불량의 상태다."
- 현대음악의 불모지였던 1960년대말 한국에서, 세계의 수준높은 현대음악을 소개한 '판 뮤직 페스티벌'은 어떻게 만들어졌나.
"당시 윤이상 선생한테 배울 때, 선생이 '폴란드의 가을페스티벌 같은 현대음악제가 한국에도 필요하다'는 말씀을 하셨다. 새겨뒀다가 선생이 독일로 돌아가신 후 바로 시작했다. 한국 유일의 현대음악제로 크세나키스, 노노 등 주요 작곡가를 주제로 잡아가며 1992년까지 이어졌다. 그 행사를 통해 현대음악의 새 정보들을 제공한 점은 큰 보람으로 생각하고 있다."
- 지금까지 현대음악을 해 오면서 특히 좋았던 순간은.
"1975년 대성공을 거뒀던 이화여대 대강당에서의 행사다. 만원을 이룬 관객 앞에서 직접 설명하던 기억은 생각하면 아직도 매우 즐겁다. 프랑스 주자들이 와서 크세나키스의 '에온타'를 연주했을 때, 생각도 못 한 세계가 펼쳐지자 모두들 깊이 감동받던 모습은 생생한 추억이다."
- 불모의 땅에서 성공을 거둔 이유는 뭐라고 생각하나.
"초연은 물론 최고의 곡이 아니면 무대에 올리지 않는다는 원칙을 견지했기 때문이다. 나의 주도로 세계 초연한 작품이 150곡은 넘는다. 세계적 연주자들을 불러 모두 무료로 공연한 행사였다. 관객을 끌기 위해 전단지 배포는 물론, 언론 인터뷰 등의 기회를 적극 활용했다. 라디오로 전국에 방송하는 걸 알고 어떤 외국 연주자는 '한국은 현대 음악의 천국'이라는 말까지 했다."
- 적극적 활동이 인상적이다.
"1976년 첫선을 보인 FM이 현대음악을 기획해 달라고 청해 왔었다. 넉 달 동안 2시간짜리 프로그램 '현대음악'을 즉흥 진행했다. 1984년에는 영상매체쪽으로도 활동했다. 젊은 시절 내가 공부했던 베를린 공대에서 영국의 실험작가 로버트 태롤이 만든 16mm 영화 '용' '봉황' '돌사자'의 음악을 맡았다. 그는 결국 한국에서 승려가 됐다."
- 컴퓨터 음악의 미래는.
"컴퓨터 음악이란 아이디어 경쟁과도 같다. 이런 점에서 보면 세계의 컴퓨터 강국인 한국의 가능성은 특히 밝다. 20년 전 컴퓨터 음악 스튜디오를 갖추려면 수 억원이 들었지만 지금은 몇 백만원으로 그 시설을 능가할 수 있다.
컴퓨터로 장난만 하지 말자. 나도 생각해 보지 못한 소리를 만들어내는 사람이 나오기를 기대한다. '지금껏 들어본 적 없는 소리'를 만든다는 목표가 필요하다. 1981년 한국인 최초로 독일에서 '모자이코'를 발표했을 때가 그랬다."
■ 강석희의 '작곡 철칙'은
88올림픽은 올림픽 사상 처음으로 컴퓨터 음악을 썼던, 예술적으로 진보적이었던 행사였다. 제우스 신, 천둥, 번개, 투창 대회, 춤 등의 이미지를 컴퓨터, 트럼펫, 여성 보컬 등을 빌려 형상화한 그 음악에 대해, 본격 컴퓨터 음악이 낯선 사람들은 "무섭다"는 반응까지 보였다.
"모방 혐의가 있다"는 등의 낭설이 불거지자 주최측이 사과까지 했다. 미국에서는 필립 글래스의 미니멀 음악을 업그레이드한 것이라는 평이 나오기도 했다.
강석희씨는 매우 부지런한, 육식성의 작곡가다. 왕성한 소화력으로 솔로, 오케스트라, 오페라, 실내악 등 전통적 형식의 작품들을 각기 적합한 어법으로 작곡하고 있다. 그를 지탱해주고 있는 힘은 "형식에 따라 음악 어법도 달라야 한다"는 것과 함께 "예술의 자기 모방은 절대 불가"라는, 두 가지 철칙이다.
그는 한국인의 짜집기 식 접근과 문화 편식을 문화 강국의 길에 놓인 최대의 걸림돌로 경계했다. 1984년 독어와 이탈리아어 대본에 의거해 지었던 2시간짜리 음악극 '펜테지레아'가 좋은 예다.
"쾰른과 로마의 방송국은 원곡 그대로 내보냈는데, 감동했다는 평이 따랐죠." 그러나 1994년 국내 예술의전당 소극장에서 공연됐을 때는 20분 동안 하이라이트만 소개됐다.
강씨의 말에 따르면 지금 세계 현대음악에는 조타수가 없다. 그는 "슈톡하우젠, 크세나키스, 리게티 등 거장들이 최근 3~4년 새 모두 세상을 뜨는 바람에 구심점을 잃은 상태에서 독일의 정진이 주목된다"고 했다. 21세기의 현대음악이 또 다른 기대를 갖게 하는 이유다.
대선배들에 대한 그의 평을 들어보자. "새로움의 추구라는 면에서 본다면 스트라빈스키가 최고다. 그러나 베토벤은 본질적으로 최고다. 완성도ㆍ구조ㆍ창조성 등의 견지에서 예외가 없다. 특히 작품번호 130번 이후의 현악4중주곡들은 그 중 대표작이다."
장병욱 기자 a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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