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상무장관 지명자가 또 중도 사퇴했다. 지난달 빌 리처드슨(뉴멕시코 주지사) 지명자가 상원 인준청문회가 시작되기 전 특정업체와의 유착혐의가 불거져 낙마해 상무장관 지명자만 두번째이다. 탈세의혹으로 물러난 톰 대슐 보건장관 지명자까지 포함하면 장관 후보로는 세번째다.
지난주 상무장관으로 지명된 저드 그레그 공화당 상원의원(뉴햄프셔)은 12일 성명을 통해 “나와 버락 오바마 정부 사이에 해결할 수 없는 갈등이 있다”고 사퇴 배경을 밝혔다.
그는 “(상무장관) 자리를 받아들이기 전에 서로 많은 차이에 대해 논의했으나, 이런 우려에 충분한 주의를 기울이지 못했다”며 “우리는 매우 중요한 정책에서 다른 관점을 갖고 있었다”고 말했다.
그레그 지명자의 사퇴로 로버트 게이츠 국방장관, 레이 라후드 교통장관에 이어 세번째 공화당 인사를 각료를 임명하려던 오바마 대통령의 ‘통합의 정치’는 일단 제동이 걸렸다. 또 오바마 정부의 각료급 고위인사들이 인준 과정에서 탈세 등 혐의로 연이어 낙마, 여론의 비판이 고조되고 있는 와중이어서 오바마 정부의 검증시스템에 근본적인 결함이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그레그 의원이 밝힌 사퇴의 이유는 크게 두 가지. 경기부양책과 내년 실시되는 인구센서스에 대한 이견이다. 그레그 의원은 성명에서 경기부양에 대한 입장 차이를 시인하면서도 자세한 언급은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공화당의 당론처럼 오바마 정부의 과다한 재정지출에 반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래서 지난주 상무장관 지명을 받아들이면서도 상원의 경기부양법안 표결에 참여하지 않았다.
가장 첨예한 갈등은 인구센서스 문제였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10년마다 실시되는 인구센서스는 정치권에서는 매우 민감한 현안이다. 인구조사 결과에 따라 선거구 획정이 달라지고 연방정부의 지원규모도 바뀌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자신들에게 우호적이면서도 전통적으로 인구센서스에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던 도시 거주 소수인종을 내년 조사에서는 적극적으로 계량화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왔다.
오바마 정부 역시 공화당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상무부 관할인 인구조사국에 대한 통제권을 더욱 강화하려는 조치를 취해왔다. 그러나 그레그 의원은 상원에서 인구조사국의 예산 삭감을 여러 차례 주장할 만큼 인구조사에 소극적인 입장을 보여 왔다.
로버트 깁스 백악관 대변인은 “상무장관에 자신의 이름을 올려달라고 먼저 대통령에게 요청한 것은 그레그 의원이었다”고 그의 갑작스러운 사퇴에 불편한 심기를 내비치면서도 “그는 여러 이견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의 의제를 지지하겠다는 분명한 의사를 밝혔다”고 전했다.
미치 매코넬 공화당 상원 원내대표는 그레그 의원의 사퇴에 대해 “가장 현명하고 활발한 의정활동을 펼친 그의 귀환을 환영한다”고 밝혔다.
워싱턴=황유석 특파원 aquariu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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