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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민노총이 망하면

입력
2009.02.19 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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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노총이 없어지면 지금보다 세상이 더 평화롭고 좋아질까. 그렇게 생각할 사람들도 있다. 정부와 기업들로서는 바라는 노동정책을 수립하고 추진하는 데 한결 수월할 것이다.

어떡하든 경제를 살리고 대량실업으로 인한 사회불안을 막기 위해서는 임금 삭감과 일자리 나누기는 물론 비정규직 기간제 연장이나 최저임금제 차등적용이 필요한데 민노총이 결사반대하고 있으니. '노사민정 대타협'을 통해 서로 조금씩 양보하는 마음을 한번 보여주자고 해도 "너나 잘하세요"라며 전면투쟁만을 고집하고 있으니.

골치 아프지만 필요한 존재

노동문제 뿐이라면 그나마 괜찮다. 정부의 모든 정책, 아니 정부 존재마저 부정하면서 틈만 나면 정치투쟁을 일삼으니. 논리 또한 해괴하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촛불집회를 열면서 그 고기를 먹으면 노동자가 아플 수 있기 때문에, 방송법 개정은 정부가 방송을 장악하면 노동자의 알 권리가 무시되기 때문에 'MB악법' 저지를 위해 그들은 투쟁한다.

정치적 투쟁에는 이념적 동질성도 중요하지 않다. 뜻에 맞지 않거나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어떤 정권도 '적'이다. 자신들의 존재를 합법화시켜 준 김대중 정부에까지 등을 돌렸다. 1998년 노사정위가 자신들의 이익을 관철하는 수단이 되지 못하자 탈퇴하면서 불법파업으로 맞섰다.

노무현 정부 때는 어땠나. 당시 노동부장관이었던 김대환 교수(인하대)는 최근 펴낸 <한국노사관계의 진단과 처방> 에서 "적극적인 고용정책 등 나름대로 전향적인 정책을 폈음에도 불구하고 거기에 만족하지 않고 정치적 공세를 지속하거나 이러한 상황을 활용해 상층 간부들이 실리를 챙기는" 짓을 하면서 그것이 '전투적 실리주의'라고 했다.

그 결과는 무엇이었나. 현대차 같은 일부 대기업의 정규직 근로자, 민노총 간부들만 노동귀족으로 만들었다. 말로는 노동약자와 조합원의 권리를 외치지만 그들의 정치투쟁은 조합원의 정서와 동떨어진 조직 이기주의로 치달았다.

이기주의는 조직 내부에까지 스며들어 현장파와 중앙파와 국민파 등으로 나뉘어 서로 갈등하고, 조직을 장악한 계파는 현장의 의견이나 민주적 의사결정과정을 무시하는 결과를 낳았다. 한 간부의 여성조합원에 대한 성폭행 기도와 그것에 대한 전체주의적인 대응 역시 민노총의 조직생리와 무관하지 않다.

그렇다고 민노총은 없어져야 할 존재인가. 사건이 터지자 기다렸다는 듯 보수세력은 벌떼처럼 공격을 퍼부었다. 가장 민주적이고 깨끗하며, 약자 보호에 앞장서야 할 민노총이 저지른 행위를 보면 비난 받아 마땅하다. 조그마한 실수도 용납하지 않고 정권 퇴진과 대통령 사과를 밥 먹듯 부르짖는 그들인 만큼 집행부 총사퇴와 대국민사과는 당연했다.

다분히 내부의 정치적 갈등을 반영한 회전문식 인물 교체와 형식적인 반성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는 요구도 정당하다. 그러나 이런 요구들은 어디까지나 이 참에 뼈를 깎는 자성을 통해 민노총이 거듭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나와야 한다. 존재 자체를 아예 없애거나 부정하는 것이면 안 된다. 민노총 역시 필요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5년간의 전국노동조합협의회(전노협)를 거쳐 1995년 탄생한 민노총과 그 산하 조직인 전교조가 우리사회에 끼친 긍정적 역할을 인정해야 한다. 그들이 없었다면 사회 민주화도 늦어졌을 것이고, 완벽하지는 않지만 근로자들의 권리도, 학원의 투명성과 교사들의 도덕성도 지금 같지는 않았을 것이다.

절차적 민주화부터 다져야

문제는 가난하고 약한 자를 위하고 사회정의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자신들, 특히 간부들은 강하고 풍요로워야 하고, 부도덕해도 괜찮다는 오만과 독선과 조직이기주의에 있다.

그것을 버려야만 조합원과 국민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 진숙경 고려대 노동대학원 강사의 말대로 "지도부의 책임과 집행부 내부와 현장의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는 절차적 민주주의의 강화"가 그 첫 걸음이다. 필요하다면 '하방(下放)'으로라도 권력과 정치투쟁에 물든 집행부의 인력을 쇄신하고 정파간 갈등을 풀어야 한다. 민노총이 정말로 '망하지' 않으려면.

이대현 논설위원 leed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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