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증현 신임 기획재정부 장관이 13일 오전 한국은행을 방문했다. 이성태 한은 총재와 집행 간부, 그리고 금융통화위원과의 상견례를 갖기 위한 자리였다. 재정부 장관이 한은을 직접 방문한 것은 1998년 한국은행법이 개정된 이후 10년여 만에 처음. 한은법 개정 이전에야 옛 재정경제원 장관이 금통위 의장을 겸임하며 한은을 수시로 드나들었지만, '한은 독립'이 이뤄진 뒤에는 생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공조체제 구축될까
이날 회동은 윤 장관이 초유의 경제위기 앞에서 1기 경제팀 내내 불편했던 한은과의 관계를 복원하고 협조를 구하자는 성격이 짙다. 강만수 전 장관 시절 두 기관은 환율정책, 금리정책, 한ㆍ미 통화스와프 등을 두고 번번이 마찰을 빚어왔다. 재정부 관계자는 "장관이 한은을 방문한 것도 그렇지만 취임 사흘 만에 방문했다는 점도 한은과의 관계 개선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재정부는 회동 뒤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정부와 한은 양 기관간 긴밀한 협력체제 구축이 긴요하다는데 인식을 같이 했다"며 "경기 침체에 대한 대응을 위해서는 재정과 금융의 역할이 확대돼야 한다는데도 공감했다"고 밝혔다.
한은법 2라운드?
윤 장관의 한은 방문이 유난히 관심을 끌었던 이유 중 하나는 이 총재와의 구원(舊怨) 탓. 한은법 개정을 두고 정부와 한은이 정면 충돌했던 1997년, 윤 장관과 이 총재는 최전선에 서 있었다. 당시 재정경제원 금융정책실장이었던 윤 장관은 은행감독원을 한은에서 분리시키는 내용의 한은법 개정안을 강력히 밀어붙였고, 이 총재는 한은 기획국장으로 국회 업무를 총괄하며 법 개정을 온몸으로 막았다.
한은이 은행감독원을 내놓는 대신 금융통화위원회 의장직을 가져오는 장군멍군 식 결론으로 끝났지만, 두 기관 간 깊이 패인 앙금은 좀처럼 해소되지 않았다.
이날 화두 중 하나가 한은법 개정이었다는 점도 아이러니다. "한은법 개정의 필요성에 대해 공감대가 형성됐다"는 것이 재정부와 한은 참석자들의 설명이지만, 방점은 "충분한 시간을 두고 연구, 검토하자는 인식을 같이했다"는 데 찍혔다. 한은법의 손질이 필요하긴 하지만, 중요하고 복잡한 사안인 만큼 굳이 서두르지는 않겠다는 의미다. 물론 한은법 제1조의 설립 목적에 '물가 안정' 외에 '금융 안정' 을 추가, 위기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한다는데 정부나 한은 모두 반대할 이유가 없어 보인다. 하지만 일단 각론으로 들어가면 10여년 전처럼 첨예한 대립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탓이다.
이영태 기자 yt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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