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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지폐' 본전도 못 뽑는 경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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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지폐' 본전도 못 뽑는 경찰

입력
2009.02.19 0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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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이 한국은행의 승인도 없이 만든 가짜지폐가 시중에 유통돼 책임 및 보상 문제를 놓고 논란이 일고 있다. 제과점 여주인 납치 공범인 정모(32)씨가 17일 인질 몸값으로 가져간 수사용 가짜 지폐 7,000만원 중 700만원을 오토바이를 구입하는 데 사용한 것은 국가기관이 만든 가짜 지폐가 유통된 사상 초유의 일이다.

■ 피해자 보상은 어떻게?

당장 피해를 입은 오토바이 판매자가 보상을 받을 수 있느냐가 논란거리다. 경찰은 유례가 없는 일이다 보니 당혹스러운 표정이다. 경찰 관계자는 "현재로선 우리가 직접 피해자에게 보상해줄 규정이 없다"는 말만 내놓고 있다.

통상 위조지폐로 피해를 입은 경우 위조지폐를 만들어 유통시킨 범인에게 손해배상을 받아야 하지만, 이번은 국가기관이 만든 가짜지폐로 피해를 봤다는 점에서 사정이 다르다.

법무부 관계자는 "경찰의 직무집행 중 고의과실이라면 국가배상 청구를 할 수 있고, 경찰의 불법행위라면 민사소송을 걸 수 있는데 이번 사건은 따져봐야 한다"고 말했다. 피해자가 보상을 받더라도 복잡한 소송 절차를 거쳐야 한다는 얘기다.

하지만 경찰이 보상 대책도 없이 가짜지폐를 수사에 활용했다는 점에서 비난을 면키 어렵게 됐다. 곽대경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경찰이 유통 가능성을 고려하지 않고 가짜지폐를 동원한 결과다"며 "선의의 피해자이기 때문에 경찰이 액면가로 보상하는 규정을 속히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 경찰, 통화위조죄 or 저작권법 위반?

경찰이 18일 공개한 가짜지폐는 육안으로 얼른 구별하기 어려울 만큼 상당히 정교한 수준이었다. 이는 '은행권의 200% 이상이나 50% 이하 크기'라는 한은의 모조지폐 가이드라인을 넘은 것으로, 한은의 사전 승인을 받지 않으면 사용할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경찰은 가짜지폐 제작 및 사용에 앞서 한은의 승인을 받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아무런 근거 없이 가짜지폐를 만들어 사용함으로써 불법 논란을 피할 수 없게 된 것이다.

형법상 통화위조죄는 '행사 목적으로 화폐를 위ㆍ변조'하는 것인데 경찰이 유통시킬 목적이 아니었던 데다, 설령 통화위조죄라 하더라도 인질 구출에 사용해 위법성 조각사유(긴급피난)에 해당될 수 있어 처벌은 어렵다는 게 법조계 의견이다.

하지만 한은의 허가 없이 정교한 가짜지폐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저작권법 위반에는 해당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한은 관계자는 "저작권 침해 제소여부는 검토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 가짜 지폐 수사기법 적절한가?

경찰이 제과점 여주인 납치 사건에 사실상 처음 활용한 가짜지폐 수사기법의 적절성을 두고도 찬반 논란이 뜨겁다. 이승윤 한은 발권정책팀장은 "국가 기관이 화폐질서를 교란하는 가짜지폐를 만든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

수사상 필요하다면 국가가 예산을 확보해서 해야 할 문제"라고 말했다. 남재성 한라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가짜지폐가 발각될 경우 인질의 인명과 직결될 수 있어 매우 위험하고 부당한 기법"이라고 지적했다.

반면 경찰이 대책 없이 사용하긴 했지만 수사예산이 확보되지 않은 현실적인 여건을 고려할 때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는 의견도 만만찮다.

곽대경 교수는 "외국에선 마약수사처럼 많은 돈이 들거나 범인에게 뺏길 위험이 있는 경우는 가짜지폐를 동원하기도 한다"며 "시간이 지나면 지폐 인쇄가 뭉개지는 등의 보완 장치를 마련한 뒤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경찰청 관계자도 "범인이 가짜지폐를 사용할 경우, 범인 추적의 단서가 되는 만큼 필요한 기법"이라고 주장했다.

미국에서는 FBI가 마약 수사 등에 가짜지폐를 동원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공식적으로 확인되지는 않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가짜지폐는 은밀한 수사기법이어서 대부분 나라에서 활용여부를 공개하지 않는다"며 "우리는 가짜지폐 기법을 활용하자마자 노출되는 바람에 곤혹스럽다"고 말했다.

송용창기자 hermeet@hk.co.kr

강주형기자 cubi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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