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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행도 몰랐던 인질구출용 가짜지폐 12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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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행도 몰랐던 인질구출용 가짜지폐 12억

입력
2009.02.19 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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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이 수사 목적으로 만든 1만원권 가짜지폐 7,000장이 납치범 손에 넘어가 골머리를 앓고 있다. 특히 경찰이 현 한국은행 담당자들도 모르게 은밀히 활용해왔던 가짜지폐 수사기법이 공공연하게 노출되는 바람에 곤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최근 경찰이 제과점 여주인 납치범을 검거하는 데 사용한 가짜지폐 활용술은 2005년 서울경찰청이 처음 도입한 수사 기법이다. 납치범이 인질 석방 대가로 거액을 요구할 때 위치추적시스템(GPS) 장치가 부착된 돈 가방에 '진짜 같은 가짜 돈'을 담아 준 뒤, 인질을 안전하게 넘겨 받은 후에 GPS 추적 등으로 범인을 검거하는 방식이다.

경찰 관계자는 "거액의 현금 없이도 인질을 구출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피해자 가족이 급히 현금을 마련하기 어렵고 경찰도 그만한 예산이 없는 현실적인 여건을 고려한 것이다"라고 말했다.

서울경찰청은 2005년 8월 구권 1만원짜리 가짜지폐 12억원 어치를 처음 만들었다가 신권이 발행되자 2007년 8월 신권 가짜지폐를 새로 찍어 일선 경찰서에 10억원을 전달하고 자체적으로 2억원을 보관해왔다.

경찰청 관계자는 "서울청 외에 다른 지방청에서 가짜지폐를 제작했다는 보고는 없다"고 말했다. 서울청이 만든 1만원권 가짜지폐는 일련번호가 모두 'EC1195348A'이며, 진짜 지폐보다 1㎜ 크고 은색 홀로그램 부분이 짙은 회색으로 나타나는 것 말고는 육안으로 식별이 불가능할 정도로 정교하게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경찰이 가짜지폐 기법을 제대로 활용할 기회는 그 동안 거의 없었다. 경찰 관계자는 "대부분 인질범들이 협박 과정에서 붙잡히거나, 현장에 돈을 받으러 나타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며 "가짜지폐가 실제 인질범 손에 넘어간 경우는 이번이 처음"이라고 말했다.

이번 제과점 여주인 납치 사건에서 드러났듯이 가짜지폐 기법은 적지 않은 위험성을 내포한 '양날의 칼'로 확인됐다. 범인들이 가짜지폐 7,000만원을 건네 받은 뒤 곧바로 돈가방을 버려 GPS가 무용지물이 됐고, 범인 한 명이 아예 돈을 갖고 도망쳐 가짜지폐가 대량으로 유통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범인들이 치밀하지 못해 속아넘어가는 바람에 인질을 석방한 것은 다행이지만, 이들이 가짜지폐인줄 알아챘다면 인질이 위험에 처할 수도 있었다.

더구나 경찰은 15일 검거 브리핑 과정에서 가짜지폐와 GPS 등 수사기밀을 모두 노출하는 실수까지 저질렀다. 서울청 관계자는 "언론에 낱낱이 공개되는 바람에 앞으로 인질납치범들이 가짜지폐에 속아넘어가겠느냐"며 "이제 예산을 따로 마련하든지 해야 될 판"이라고 말했다.

경찰이 지난 4년 동안 수사에 가짜지폐를 활용해왔다는 것은 한국은행 관계자도 모르고 있었다. 한은 발권담당 팀장은 "이번에 보도가 나와서 처음 알고 놀랐다"고 말했다.

가짜지폐는 유통이나 판매 목적으로 사용할 경우 형법상 처벌을 받는다. 광고ㆍ교육ㆍ홍보 등의 용도로 단순 제작할 경우에도 한은의 가이드라인을 따라야 하고 이를 어기면 저작권법 위반이 된다.

경찰이나 한은 관계자들 모두 2005년 당시 양측간 협의가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당시 담당자가 아니어서 모르겠다"고 말했다. 한은 관계자는 "경찰이 한은의 승인 없이 제작했다면 문제가 될 수 있겠으나 저작권법 위반 제소 여부는 검토해봐야 한다"고 말을 아꼈다.

송용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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